Priest 太岁(태세) 제7장 진강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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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岁》priest ^第7章^ 最新更新:2021-02-15 11:00:00 晋江文学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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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쉿——" 해평은 갑자기 미쳐 날뛰는 말을 허둥지둥 잡아당겼다.
   말이 일으킨 바람에 옆에 있던 낡은 홰나무에서 '도망사*'가 떨어졌다. 너덜너덜한 흰 종이가 구린내를 풍기며 해평의 얼굴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필사적으로 말을 당기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 찢어진 종이를 떼어냈다. 그 위에는 다음과 같은 대작 한 편이 적혀 있었다.
   *도망사(悼亡詞): 아내나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쓰는 시가(詩歌). 서진의 반악(潘岳)이 망처를 애도하며 쓴 「도망시」에서 유래했다.
 

   안락향은 미인들의 무덤이니, 가로놓인 옥체를 마음껏 엿보네.
   내년이면 푸른 이끼가 뒤덮일 테니, 자라가 몇 마리인지 거북이가 몇 마리인지*.
   *중국에서 자라와 거북이는 '포주', '바람난 아내를 둔 남편', 또는 비열한 '개자식'을 뜻하는 심한 욕설. 안락향에 묻힌 기녀들을 향해 '죽어서 무덤에 풀이 무성해질 때쯤이면 그 위로 발정 난 개자식들이 얼마나 꼬여들겠느냐'며 고인을 희롱하고 모독하는 내용...입니다.


   "퉤!"


   말이 또 앞으로 수 장을 돌진하더니 하마터면 남의 무덤을 밟을 뻔했다. 앞발을 높이 쳐든 말은 겁에 질린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삑사리를 내며 당나귀 같은 비명을 질러댔다.


   안타깝게도 주인은 지음*이 아니라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발길질을 한 번 되돌려주었다.
   *지음(知音): 거문고 명인 백아(伯牙)와 그의 연주를 완벽히 이해했던 종자기(鍾子期)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자기 속마음을 깊이 알아주는 참된 친구'를 뜻한다.


   "멍청한 놈, 어딜 함부로 뛰어!"


   안락향의 지형은 복잡하지 않았다. 묘원을 둘러싸고 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닦아놓은 석판길이 한 바퀴 둘러져 있었고, 그 안쪽은 모두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좁은 흙길이었다. 방혼*을 추모한답시고 찾아오는 '시인 묵객'들이 밟고 다녀서 생긴 길이었다.
   장리의 마차가 밖에 세워져 있지 않은 것을 보니 분명 묘원 안으로 들어간 것이 틀림없었다. 마차가 들어왔다면 외곽의 석판길로만 다닐 수 있을 테니, 석판길을 따라 한 바퀴 돌다 보면 반드시 마주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한 해평은 매질과 욕설을 섞어가며 억지로 말을 달리게 했다.
   *방혼(芳魂): 직역하면 '향기롭고 꽃다운 영혼'으로, 고전문학에서 젊고 아름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죽은 여성의 넋을 애틋하게 이르는 말.


   하지만 달리다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안락향이…… 이렇게 넓었던가?


   해평의 기억으로는 큰길과 좁은 길을 다 합쳐도 두 발로 걸어 돌아보는 데 삼 각*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빠른 말로 한참을 달렸는데도 석판길 한 바퀴를 채 다 돌지 못했다. 심지어 그가 들어왔던 입구조차 보이지 않았다.
   *45분
 

   날은 어두워지고 안개는 갈수록 짙어졌다. 해평은 누군가 눈앞의 석판길의 머리와 꼬리를 잘라내어 끝없이 이어지는 둥근 고리로 만들어버린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세월의 풍파를 겪은 홰나무와 측백나무들이 모조리 한 틀에서 찍어낸 듯 똑같이 생겼다. 짙고 끈적한 안개가 나뭇가지 사이를 가득 메워 석 자 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나무 그림자들은 일제히 어른거리는 귀신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세 번째로 똑같은 갈림길을 지나칠 때, 해평은 말고삐를 당겨 세우며 중얼거렸다. "이 길 벌써 몇 번이나 본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말은 두 자는 족히 될 법한 긴 얼굴을 하고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또 한 번 당나귀 울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반복해서 나타나는 이 좁은 흙길을 제외하면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석판길 위에는 더 이상 다른 갈림길이 없었다.
   해평은 생각했다. '가자, 가보자...... 아, 가보자고!'


   그는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려 했으나 말은 결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죽어도 꿈쩍하려 하지 않았다.
   해평은 한참 동안 놈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도저히 이 못난 짐승을 부릴 길이 없자 길가 나무에 말을 매어두고는 올해 후부의 섣달그믐날 식탁에 기필코 이놈 몫의 '접시 하나'를 올려두겠노라 선고했다.


   그러고는 도포 자락을 질끈 묶고 아예 두 다리로 척척 걸어 들어갔다.


   '귀타벽*'에 대한 전설이야 해평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여기서 바보처럼 맴돌다가는 어느 세월에 빠져나갈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대체 어떤 어여쁜 귀신이 도련님의 준수한 미모를 탐내어 굳이 자신을 이곳에 가둬두려는지 직접 들어가 확인해 볼 참이었다.
   *귀타벽(鬼打墙): 무덤가나 숲 등에서 귀신이 벽을 세워 사람의 길을 막고 환상 속에 가두어 제자리를 맴돌게 만든다는 중국의 전설.


   해평은 외박할 생각이 없었기에 등불도 챙기지 않았다. 품에 있는 거라곤 두 치 남짓한 비취 '화융합*'이 전부였는데, 평소 늙은 조모의 담뱃대에 불을 붙여드릴 때 쓰던 물건이었다.
   화융합을 흔들어보니 기름이 다 떨어져 가는 것 같았다. 용수철을 누르자 도월금 톱니바퀴가 부싯돌을 맞물리며 마치 늙은 당나귀가 수레를 끌 듯 한참을 돌아가더니 겨우 열기가 돌았지만, 도무지 불꽃이 튀어 오르진 않았다. 해평은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붙여보려 했으나 너무 젖어있어 포기하고 한쪽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더듬더듬 어둠을 뚫고 수풀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융합(火绒盒): 라이터 - 작가주


   그는 겁이 없었기에 오솔길 양옆에 널린 크고 작은 무덤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수풀이 묘지를 가려 일 년 내내 햇빛 한 줌 들지 않았다. 그곳엔 평생 빛을 보지 못한 이들이 묻혀 있었다. 그녀들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저 이 관짝에서 저 관짝으로 옮겨간 것처럼 줄곧 침묵을 지키며 죽은 뒤에도 사방에 널린 터무니없는 음담패설 속에서 계속 침묵해야 했다. 해평은 걸음을 옮기며 목맨 귀신처럼 나무에 치렁치렁 매달려 있는 잡스러운 시 구절들을 닥치는 대로 뜯어냈다. 이 귀신들이 정말 작간을 부릴 위인들이었다면 진작 원한과 복수를 갚고도 남았을 텐데 뭣 하러 안락향 같은 곳에서 이딴 굴욕을 참고 있겠는가?


   귀타벽을 쳐서 그를 끌어들인 걸 보면 십중팔구 하소연할 억울한 사연이 있어서일 터였다.


   하지만 주위는 여전히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 정도로 적막했고 또 캄캄한 탓에 자꾸만 발부리가 걸렸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한참을 더듬거리던 해평은 자신이 너무 신경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꽃다운 영혼들 앞에서 그렇게 많은 '연꽃*'을 토해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휘파람으로 소곡이나 한 가락 불며 마음을 가라앉히기로 했다.
   순간 머리가 어떻게 돌아버렸는지, 그는 왕보상과 동장이 죽기 전에 불렀던 그 <환혼조>를 불기 시작했다.
   <환혼조>는 민간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곡이라 판본이 워낙 많았다. 대략적인 윤곽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음률은 곡을 할 때 알아서 뽐내야 했다.
   '여감공' 판 <환혼조>는 다른 건 몰라도, 구성지고 듣기 좋기로는 항간의 여타 곡들을 가뿐히 압도했다.
   *연꽃을 토하다(口吐莲花): 본래 입에서 연꽃이 나올 만큼 훌륭하고 예쁜 말을 한다는 뜻이나, 방혼 앞에서 거친 쌍욕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걸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해평이 한창 자아도취에 빠져 있을 무렵, 돌연 자신의 휘파람 소리에 '메아리'가 섞여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입을 홱 다물자 그 '메아리'는 반 박자 늦게 멎었다. 해평은 머리끝이 쭈뼛 서며 반사적으로 허리에 찬 장식용 검을 꽉 움켜쥐었다.
 

   누군가가 수풀 속에서 몰래 그를 미행하며 심지어 휘파람까지 따라 불고 있었다!


   동시에, 휘파람을 따라 불던 자 역시 자신이 들켰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수풀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숲 깊은 곳으로 도망쳐버렸다!
   아무리 해평의 담력이 하늘을 찌른다 한들 등골이 오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어, 본능적으로 반대 방향을 향해 뛰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멀지 않은 전방에서 안개를 뚫고 새어 나오는 한 줄기 불빛을 발견했다. 발소리가 불빛과 함께 울리며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한쪽은 한밤중 무덤가 수풀에서 제 휘파람을 따라 부르는…… 사람인지 뭔지 모를 괴물이고, 다른 한쪽은 등불을 들고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이었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봐도 후자가 훨씬 정상적이었다. 어쩌면 그처럼 묘지에 갇힌 성묘객이거나 아니면 장리 일행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광석화의 찰나, 해평은 고개를 돌려 오히려 수풀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남들보다 귀와 눈이 밝은 데다 어릴 적부터 각종 악기 다루기를 즐겨 소리에 무척 예민했다. 수십 명의 악사들이 합주하는 와중에도 누가 음을 틀렸는지 귀신같이 짚어낼 정도였다. 방금 전 휘파람을 따라 불던 자가 움직였을 때, 그는 그 바스락거리는 기척만으로 상대의 체구가 아주 작으며 들킨 직후 몹시 허둥대며 달아났다는 것을 간파했다.
   반면 다른 한쪽은 땅에서 떨어진 등불의 높이만으로도 제등인의 덩치를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장리나 묘지기 노인은 절대 그 정도로 키가 크지 않았고, 그 곱사등이 마부일 리는 더더욱 없었다.


   이 숲속 오솔길은 밖의 석판길처럼 매끄러운 곳이 아니었다. 해평 자신도 몇 번이나 발목을 접질렸고 거기다 짙은 안개까지 깔려 있는데, 제아무리 등불이 있다 한들 발걸음이 저토록 흔들림 없이 안정적일 수 있단 말인가?


   한쪽은 속내를 알 수 없이 기이했고, 다른 한쪽은 적어도 덩치와 완력으로 제압해 볼 만했다. 해평은 뇌리를 스치는 찰나의 저울질 끝에 과감히 만만한 쪽을 골랐다.


   그가 수풀로 몸을 날린 건 본래 제등인을 피하기 위함이었으나, 휘파람을 따라 불던 자는 해평이 자신을 쫓는 줄 알고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람이 긴장하면 머리보다 다리가 앞서는 법이라, 쫓아오면 본능적으로 달아나고 달아나면 본능적으로 쫓아가게 마련이다. 해평이 제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소리를 쫓아 질주하는 중이었다.
   그는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달리기라면 꽤 자신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한참을 추격하던 해평은 자신이 쫓는 것이 거대한 말원숭이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덩치가 사람 반만 한 것 같은데 개보다도 훨씬 발이 빨랐다!


   그는 속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체 저건 무슨 요괴란 말인가?


   돌연 해평의 발끝이 땅 위로 불거진 고목 뿌리에 턱 부딪혀 몸뚱이가 그대로 허공을 날아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도망치던 검은 그림자를 기막히게 포착했다. 그는 날아가는 기세를 빌려 패검을 휘둘러 상대의 몸뚱이를 후려쳤고, 날랜 솜씨로 상대의 뒷덜미를 낚아채어 두 사람은 나란히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자신이 붙잡은 '물건'의 정체를 두 눈으로 확인한 해평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뜻밖에도 어린아이…… 사람 아이였다!
 

   그가 낚아챈 것은 총각*을 튼 사내아이였다. 똑바로 서도 해평의 허리춤에나 올 법한 체구에, 포도알처럼 동그란 눈은 눈썹과 유난히 멀리 떨어져 있어 날 때부터 세상 물정 모르고 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총각(总角): 옛날 미성년자(아이)들이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빗어 올려 정수리 양옆에 두 개의 뿔 모양으로 묶은 전통 머리 모양. 한국에서 미혼 남성을 뜻하는 '총각'이라는 단어도 본래 이 머리 모양에서 유래했다.
 

   삼경이 훌쩍 넘은 야심한 시각에 어린아이가 어찌 야산 묘지를 헤매고 있단 말인가?


   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말발굽이 땅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평이 미처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손에 잡힌 아이가 훅 숨을 들이켜며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해평은 다급히 아이를 바닥에 짓누르고 입을 틀어막은 뒤, 빽빽한 수풀 틈새로 간신히 시선을 뻗었다. 마침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짙은 안개를 살짝 걷어내 주었다. 해평이 눈을 가늘게 뜨니 낯익은 마차 한 대가 보였다.


   마부의 그림자는 흐릿했으나 둥근 고리처럼 굽은 등이 영락없는 곱사등이였다.


   노장?
   마부가 여기 있다면 주인인 장리는? 그녀는 마차 안에 있는가, 아니면 근처에 있는가?
 

   늙은 마부의 그림자 역시 눅눅한 안개에 젖어든 듯, 숲속에 엉킨 나무 그림자와 기괴하게 한데 섞여 마치 일그러진 이매망량 같았다.
   해평이 미처 상황을 살피기도 전에 그의 눈가로 불빛이 어른거렸다. 그는 즉각 숨을 죽이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방금 전 저 괴상한 아이를 쫓아 밀림 속을 정신없이 헤매다 보니 어느새 오솔길 근처로 다시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 제등인도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묵직한 발소리가 다가오더니 제등인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놈은 해평이 짐작한 대로 족히 8척은 되는 장신에, 칙칙한 잿빛 대형 망토를 푹 뒤집어쓴 채 해평이 숨어있는 관목 숲을 지나 노장 쪽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그가 다가가자마자 노장의 말이 질겁하여 앞발을 땅에서 한 자 가까이 치켜들고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늙은 마부는 '쉿' 소리를 내며 한 손으로 고삐를 낚아채더니 억지로 말을 제자리에 못 박았다. 그 한 번의 당김은 최소 수백 근의 괴력이 실려 있었건만, 해평은 그 늙은이가 대체 어디서 그런 악력이 튀어나왔는지 의심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는 도저히 노장 쪽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수풀 사이에 웅크린 그의 목덜미 핏대가 미친 듯이 펄떡이며 온몸의 피를 사지로 역류시키고 있었다. 그는 그 제등인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그 자는 가죽이 없었다!


   제등인의 얼굴과 손은 붉고 흰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 거미줄처럼 얽힌 푸르스름한 핏줄들이 벌거벗은 살덩이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하필 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해평의 코끝으로 역겨운 피비린내까지 훅 끼쳐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구역질을 쏟을 뻔했다!


   이 '요괴'가 장리의 마차 쪽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고 해평의 등줄기가 확 팽팽해졌다.


   장리는 그저 가냘픈 아가씨일 뿐이고, 그녀의 늙은 마부는 반 사람 몫도 채 못 하는 노인네인데…… 이걸 어쩐다?


   해평은 이를 악물고 패검을 한 손에 쥐며 정신을 가다듬고 제등인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비록 어릴 적부터 농땡이를 치느라 무예가 형편없다곤 하나, 어쨌든 그럭저럭 검술의 겉치레 정도는 익힌 명문가 자제가 아닌가.
   정 안 되면 그 역시 혈기 왕성한 장정이고 체격과 완력이 받쳐주고 있었다!
   그는 숨을 죽이고 돌발적으로 튀어나가 검을 찔러 저 '요괴'의 숨통을 끊어놓을 승산이 얼마나 될지 속으로 저울질했다.


   하지만 그가 막 튀어나가려는 찰나, 장리의 늙은 마부가 두세 걸음 만에 쏜살같이 뛰어나와 제등인을 맞이하며 외쳤다. "선생, 드디어 오셨군요!"
 

   해평은 몸을 날리려던 동작을 간신히 멈춰 세웠으나 들이켠 숨이 하마터면 턱 막힐 뻔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둘이 한패라고?


   늙은 마부가 사뭇 다급한 기색으로 연거푸 물었다. "시진이 다 되어 가는데, 천기각에선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까?"
   제등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이네. 하나 염려 말게. 숲속에 이미 미심진을 펼쳐두었으니 수사가 난입하면 미심령이 울릴 터. 끝날 때까지는 낙담하지 말게나."
   *미심진(迷心阵) & 미심령(迷心铃): 수사의 맑은 정신을 어지럽히는 진법과, 외부의 침입을 알리는 방울.


   이 두 사람의 문답을 해평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저 둘이 천기각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대체 천기각은 왜 기다리는 걸까?
   장리가 무슨 골치 아픈 일이라도 엮인 건가?


   늙은 마부가 제등인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몹시 친숙하게 대하는 꼴을 보니 해평은 살짝 혼란스러워졌다. '설마 이 분께선 단지 용모가 좀 험악할 뿐, 속은 좋은 사람인 건가?'


   늙은 마부가 연신 탄식을 내뱉자 제등인이 그를 다독였다. "'십팔'이 전갈을 보내왔네. '삼십이'가 비록 순도하긴 했으나 금평 쪽은 만사가 순조롭고 우리 측 인원도 모두 청룡탑 아래 매복을 마쳤다더군. 어젯밤 그 귀공자는 이미 천기각으로 연행되었으니 자네 댁의 '오십' 낭자가 그의 손을 빌려 천기각에 보낸 물건도 틀림없이 당도했을 걸세. 그 천기각 놈들이 구제 불능의 쓰레기만 아니라면 자네가 길을 따라 남겨둔 흔적을 놓치진 않을 거야. 다만 그 관리 나으리들이 워낙 목숨을 아끼는 족속들이라, 지금쯤 아마 숲 밖에서만 빙빙 맴돌고 있겠지만."


   '십팔'이니 '삽십이'니 '오십 낭자'니 하는 알 수 없는 암호들에 해평은 구름 속을 걷는 듯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그자의 입에서 나온 '어젯밤 천기각으로 연행된 귀공자'라는 대목은…… 십중팔구 본인을 가리키는 게 분명했다.


   '낭자가 그의 손을 빌려 천기각에 보낸 물건'이라고? ……무슨 물건을 말하는 거지?
   해평은 슬며시 품속을 더듬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이 옥을 말하는 건가?'


   하지만 그는 이걸 넘기지 않았는데!
 

   해평은 자신이 이 거대한 연극판에서 어떤 배역을 부여받았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명백히 상대의 대본대로 움직여주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좋은 뜻으로 나쁜 일을 저지른 건지, 아니면 나쁜 뜻으로 좋은 일을 한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노장이 참담한 얼굴로 말했다. "위로 감사합니다, 선생……. 하아, 실은 저희도 진작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제아무리 치밀한 계획이라도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지요. 어젯밤 '삼십이'가 먼저 떠나갔고, 저희 아가씨께서도 이미…… 이미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정 천기각의 앞잡이를 잡아 제물로 바치지 못한다면 아가씨께서 친히 당신의 피와 살로 신을 맞이하실 겁니다."
 

   "......"
   아니, 잠깐만요!
   지금 이 두 '좋은 사람'이 뭘 잡겠다고 토론하는 건가? 뭘 한다고?
 

  "삼십이 형의 강직함과 오십 낭자의 숭고한 대의 앞에, 우리처럼 구차하게 명줄을 잇는 자들은 참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제등인이 주먹으로 가슴을 가볍게 두어 번 치며 무거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큰 불이 걷히지 않으니, 매미 소리 끝없구나."
   노장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목메임을 애써 삼키며, 똑같이 은어로 화답했다. "서리 맞아 죽을지언정 뜻을 저버리지 않으리."
 

   "시진이 다가오고 있네. 태세께서 강림하실 터이니 더는 지체할 수 없군. 가서 동지들의 진법을 채워야겠어." 제등인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안개가 마치 한 덩어리로 엉겨 붙은 듯 짙었는데, 그 눈으로 대체 무엇을 볼 수 있다는 건지……. 어쩌면 눈꺼풀이 없는 눈알이라 시야가 각별히 탁 트인 모양이었다.


   "참." 제등인이 앞으로 몇 걸음 떼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려 노장에게 일렀다. "내 종놈이 또 어딜 쏘다니는지 모르겠군. 아까 <환혼조>를 부르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은 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이 녀석은 연제*할 때 착오가 생겨서 영 길들이기가 까다로워. 혹여 눈에 띄거든 자네가 좀 붙잡아두게나. 제멋대로 날뛰다 큰일을 그르치면 안 되니까."
   *연제(炼制): 불이나 주술로 단련하여 만들어 냄


   환혼조를…… 불어?
   '종놈'……
   '연제'…….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불길한 몇 마디에 해평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아주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던 그 '아이'가 조그만 손으로 그의 팔뚝을 꽉 붙들고 있었는데, 그 두 손의 촉감이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을 뿐만 아니라 겉면이 거칠거칠한…… 나뭇결과 옹이로 뒤덮여 있었다!


   '아이'의 꼿꼿한 허리가 순식간에 반으로 뚝 접히더니 한 번, 또 한 번 연거푸 접혀 들어갔다. 나무로 된 손가락들이 하나씩 손바닥 안으로 파고들며 팔꿈치부터 '우드득우드득' 소리를 내며 위로 말려 올라가 그대로 어깨까지 축소되었다. 눈 깜짝할 새, 이 '아이'의 머리 아래쪽 몸통이 네모반듯한 나무토막으로 변해버렸다!


   "……"
   이건 대체 또 무슨 염병할 괴물이란 말인가!


   조그만 괴물이 이 틈을 타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나무토막 표면이 워낙 매끄러웠던 탓에 해평이 미처 힘주어 누르지 못했고...... 결국 녀석은 해평의 손아귀를 빠져나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녀석이 입을 쩍 벌렸다. 그 입은 실로 대단했다. 한 번 벌리면 산 사람의 머리통이 들어갈 만큼 거대했고 입안에는 못판*처럼 빼곡하고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 돋아 있었다!
   *원문은 정상(钉床)으로, 무협이나 사극에서 무당이나 차력사들이 그 위를 눕거나 걷는 뾰족한 대못이 빼곡하게 박힌 평상(침대).


   "달빛이 어둡고 바람이 거세니 시체가 변하기 딱 좋은 밤이로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제등인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오늘 밤 금평성에 군귀야행*이 펼쳐지면 그 구경거리가 얼마나 장관일지, 전부 그 후부 공자의 손에 달렸구나."
   *군귀야행(群鬼夜行): 수많은 귀신과 요괴가 밤에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현상(백귀야행).
 

   그렇게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후부의 공자는 멀지 않은 수풀 덤불 속에 납작 엎드려 나무토막에 달린 머리와 서로 눈을 부라리며 대치 중이었다.
   머리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입술을 오므려 휘파람을 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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