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est 太岁(태세) 제4장 진강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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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岁》priest ^第4章^ 最新更新:2021-02-13 11:02:23 晋江文学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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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왕은 약에 절여진 몸이라 잠자리에 일찍 들었다. 지금 왕부로 가면 또 그를 깨워야 하기에, 해평은 이틀 연달아 삼형의 잠을 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후야의 화도 어지간히 풀렸을 거라 짐작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막 단계방* 남쪽 어귀로 꺾어들었을 때 마차 한 대와 마주쳤다. 해평은 마차에 걸린 마등에 '동' 자가 적힌 것을 보고 홍려사경 동 대인 댁의 마차임을 알았다.
   *단계방(丹桂坊): '단계'는 붉은 계수나무를 뜻하며, 중국 문학에서 과거 급제와 고위 관직, 고귀한 신분을 상징함. 작중에선 황성 주변에 고관대작들이 모여 사는 명문가 주택 구역의 이름으로 쓰임.


   동가는 대대로 학자 가문이라, 이웃인 영녕후 같은 '아첨꾼'을 멸시했다. 그래서 두 집안은 같은 단계방에 살면서도 평소 왕래가 거의 없었다. 해평도 굳이 다가가 미움을 살 이유가 없어 길에서 마주치자 건성으로 공수 한 번 하고 엇갈려 지나친 뒤 빠른 걸음으로 돌아보지 않고 갔다.


   그가 바람처럼 지나가자, 마차 안의 사람은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누구인가 묻고 싶은 듯 가볍게 차 문을 두드렸다.


   늙은 마부가 고개를 들어 해평이 쏜살같이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 후부의 측문으로 쏙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느릿느릿 대답했다. "큰도련님, 방금 지나간 자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닫힌 후부 뒷마당에서 포효가 날아왔다. 해평이 측문으로 숨어들자마자 분노 가득한 제 아비의 호통 소리와 정면으로 맞닥뜨린 것이다. "문 닫아라! 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해!"
   호령과 함께 좌우에서 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튀어나왔다. 밧줄을 들고 덮치는 자도 있고 문을 걸어 잠그는 자도 있어 겹겹이 에워싸고 퇴로를 막았다.


   해평은 노련하게 이리저리 피하며 빈틈을 노리다가, 기어코 겹겹의 포위망 사이를 뚫고 빠져나갔다. 마치 한 마리 날쌘 족제비 같았다.
   안채를 향해 도망치며 그는 눈물 한 방울 없이 천둥만 치는 시늉으로 억울하게 울부짖었다. "후야,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 소자가 잘못했습니다!"
   영녕후는 한창 화가 치민 상태라 무심코 속아 넘어갔다. "네놈이 뭘 잘못했느냐?"


   해평은 그 말꼬리를 덥석 물고 똥통을 휘둘러 아버지 머리에 엎어버렸다. "아버님이 찜하신 게 정객 아가씨인 줄 진작 알았다면, 그날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직접 무대에 올라 장리를 도와 아버님과 맞서지는 않았을 겁니다!"
   후야는 전날 밤 취류화에 갔던 일로 부인에게 반나절 동안 무릎을 꿇려 하마터면 무릎에 관절염이 올 뻔했던 터라, 이 악랄한 모함에 눈앞이 새카매졌다. 망할 자식이 못된 짓도 아주 꽃을 피우는구나!


   "당장 저 불효자식을 마구간에 잡아넣고 몽둥이가 부러질 때까지 쳐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좁은 길에서 동부의 마차가 덜컹거리며 지나가다가, 후부의 집안 망신을 들은 늙은 마부가 실소하며 말했다. "허, 들으셨습니까. 영녕후 댁입니다."


   하지만 마차 안의 '큰도련님'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일정한 간격으로 차 문을 두드리고만 있었다.
   두드리는 소리는 고르고 기계적인데다 살짝 습기를 머금은 나무에 부딪혀 음산하고 둔탁한 소리를 냈다.


   똑—— 똑똑——


   "도련님?"
   똑—— 똑똑——


   마부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마차를 세웠다. "도련님, 무슨 분부라도 있으십니까? 이제 곧 댁에 도착합니다."


   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뚝 끊겼다.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했고, 멀지 않은 영녕후부 담장 너머로만 희미한 소란이 들려올 뿐이었다.

 

   마부가 느릿느릿 몸을 돌렸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차 문에 손을 얹었으나, 문을 당기기도 전에 안에서부터 차 문이 벼락같이 열렸다.
   마부는 미처 균형을 잡지 못하고 굴러떨어졌다. 뒤이어 하얀 지전* 무더기가 마차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마치 목숨을 거두러 온 악귀처럼 살아있는 것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마부의 온몸에 빈틈없이 들러붙었다.
   *지전(紙錢): 제사나 장례 때 태우는 종이돈. 저승에서 쓰라고 죽은 이에게 보내는 것으로, 중국 장례 문화의 일부.


   지전 위에는 피로 쓴 글자가 가득했는데 바로 생년월일을 적은 사주팔자 한 줄이었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솟구치고 마차 안에서 쉰 목소리의 곡소리가 들려왔다. "관을 일으켜 두 벌의 경을 외고——"


   기괴한 지전은 끊임없이 늙은 마부의 살갗 속으로 파고들며 닿는 곳마다 모조리 썩어 문드러지게 했다.
   마부의 몸은 마치 하얀 버짐으로 뒤덮인 것 같았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지전이 몸에 달라붙을 뿐이었다. 짓무른 피와 살 위로 순식간에 검붉은 꽃이 툭툭 터지듯 피어나더니, 늙은 마부는 썩은 복숭아처럼 온몸에서 진물을 줄줄 흘려댔다!
   단계방의 고요한 밤의 장막이 그 처절한 비명에 쩍 갈라졌다. 남쪽 거리의 풍등들이 줄지어 밝아졌고 창백한 증기마저 핏빛으로 물들었다.


   막 담장을 넘어 안채로 들어가려던 해평은 그 기척을 듣고, 담장에 걸터앉은 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처음에 그는 거리를 뒹구는 저 하얀 덩어리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지전이 마차 안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와 바람도 없이 스스로 움직이며 거리 전체를 집어삼킬 듯 채우는 것을 보며 속으로 의아해할 뿐이었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나방 떼가 날아왔지? 징그럽게스리.'


   그 다음 순간, 그는 수많은 하얀 지전들이 서로 뒤엉키고 뭉쳐 머리와 발이 달린 사람의 형상을 이루더니 '발'을 내딛고 문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지전 인간'은 문에 닿자 가볍게 문짝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릴 때마다 몸을 이루던 지전이 바스락거리며 떨어져 소리 없이 문짝과 문틈 사이에 찰싹 달라붙었다.


   똑—— 똑똑——


   한밤중의 끔찍한 비명에 놀란 것은 한두 집이 아니었다. 이내 측문을 지키던 문지기가 문틈을 살짝 열고 제 딴에는 은밀하게 밖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눈동자 너비만 한 좁은 틈이라도 지전이 비집고 들어가기엔 충분했다.


   처음으로 문틈을 연 문지기는 바깥이 온통 새하얀 것을 보고 가로등이 터져 뿜어져 나온 짙은 연기인 줄 알고 사람을 부르려 했다. 그때 열린 문틈 사이로 지전 한 장이 팔랑 떨어져 들어왔다.
   문지기는 고개를 숙여 그 물건을 확인하고는 "재수 없게" 하고 욕을 내뱉으며 발로 걷어차려 했다. 그러나 지전이 갑자기 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더니 미처 손쓸 틈도 없이 그의 얼굴을 덮쳤다!

 

   문지기는 펄펄 끓는 기름을 정면으로 뒤집어쓴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문이 바깥에서 쾅 부딪혀 열리더니 수많은 지전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와 그 문지기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지전이 사람을 속여 문을 열게 하고 '잡아먹는' 전 과정을 목격한 해평은 경악했다.


   이때 마침내 마차 안의 지전이 모두 날아갔다. '동' 자가 적힌 마등 불빛이 침침하게 번지며 반쯤 열린 차 문을 비췄다.
   해평이 불빛을 따라 그 안을 힐끗 들여다본 순간, 머릿속에는 그가 평생 들어온 온갖 더럽고 상스러운 욕설들이 일제히 솟구쳤다.


   마차 안에는 한 사내가…… 아니, 남자의 시신이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얼굴 절반을 뒤덮은 짓무른 살점과 시반이 가면처럼 이목구비를 덮고 있어 생전에 뉘였는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얼룩덜룩하고 흉측한 얼굴이 지금 똑바로 해평을 마주 보고 있었다!
   남자의 시신은 그의 시선을 느낀 양 동태 같은 눈알을 그쪽으로 굴렸다. 마치 그를 향해 미소라도 지으려는 듯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 올라가더니 얼굴에서 썩은 가죽 한 덩어리가 뚝 떨어졌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엉망으로 찢어진 곡조를 부르고 있었다. "칠일 밤낮…… 영을 모시니, 대도통천으로 돌아가는 길…… 보내드리네. 망설이지 마오, 한 세상의…… 희비는 물거품 같으니…… 서쪽으로 가세…… 서쪽으로 가세……"


   이 정경은 단언컨대 이승의 풍경이 아니었다. 해평은 뇌수까지 꽁꽁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때, 후부의 측문에서도 소리가 났다!
   그는 나방 같은 지전들이 제집 문 앞에 석 자 높이로 쌓여서 담장 안의 신선한 혈육과 살아있는 사람을 탐내며 문을 두드리는 것을 보았다!


   "문 열지 마! 밖에…… 젠장!" 다급해진 해평이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다, 자신이 아직 담장에 걸터앉아 있다는 사실을 잊고 머리부터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도련님!"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하인들에게 둘러싸인 뒤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를 '부러질 때까지 치겠다'라고 길길이 날뛰던 후야가 그의 등을 쓸어내리며 다급히 물었다. "어디 다친 덴 없느냐? 부딪혔느냐? 머리를 찧었느냐? 대체 뭘 본 게야…… 아비가 여기 있다. 무서워 마라, 무서워 마. 악태! 어서 사람을 시켜 밖에 무슨 일인지 보거라. 어떤 놈이 한밤중에 함부로 떠들며 문을 두드려대는 것이냐?"

 

   집사 오악태가 "예" 하고 대답하기가 무섭게, 해평이 부딪혀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며 펄쩍 일어났다.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할 새도 없이 후야를 뿌리쳤다. 한쪽 다리가 약간 절뚝거렸지만 다리를 끌며 기어코 담장 위로 다시 기어올랐다. "다, 다, 다들…… 저리 비켜! 문가에 서 있지 마! 밖을 보지 말라고! 누구 불 있는 사람? 나한테 줘!"


   그러면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요마귀괴들과 한판 붙을 기세였다. "이 도련님이 네놈들을 몽땅 태워 죽여주마!"

 

   "무슨 짓이냐? 방금 넘어지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게지? 너 당장……" 영녕후는 도통 영문을 몰라 제 재수 없는 아들놈에게 당장 내려오라 호통을 치려던 찰나, 문득 다급한 방울 소리를 들었다.


   영녕후가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방울 소리는 천기각의 청룡각수탑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일곱 개의 청룡탑 중 각수탑이 바로 단계방에 있었다.
   단계방은 황성 턱밑에 바싹 붙어 있어 '천상인을 놀라게 할까 두려워*' 동네 누각의 높이가 모두 3층을 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동북쪽 모퉁이에 홀로 솟은 6층짜리 각수탑은 유난히 우뚝 솟은 것처럼 보였다. 밤이면 단계방 사람들은 제집 마당에서 고개를 들어 달이 탑의 몇 층에 걸렸는지를 보고 대략적인 시진을 가늠하곤 했다.
   *공경천상인(恐驚天上人): 이백(李白)의 시 〈야숙산사(夜宿山寺)〉의 "不敢高聲語,恐驚天上人(감히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하니, 천상의 사람을 놀라게 할까 두렵네)"에서 유래.


   각수탑 바깥 처마에는 9촌 6분 길이의 청동 방울이 빼곡히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여느 새 쫓는 방울과 달리 이 청동 방울들에는 구리 추가 없어, 예로부터 방울이 흔들리는 모습만 보일 뿐 소리가 울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후야는 단계방에서 이십여 년을 살았지만 추가 없는 청동 방울이 소리를 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방울 소리는 높고 낮음이 뒤섞여 마치 수많은 이들이 시끄럽게 속삭이는 소리 같았다. 이내 각수탑 꼭대기에서 눈을 찌를 듯 눈부신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미진주의 등대보다 훨씬 밝은 그 빛은 허공의 안개를 단번에 꿰뚫고 비명이 울려 퍼지는 곳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각수탑의 반응은 전날 화방 나루터에서 보여준 심수탑의 대처보다 한결 더 신속했다.
   탑 처마의 청동 방울이 막 요동치기 시작하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세 개의 인영이 하얀 빛줄기를 따라 날아오르듯 뛰쳐나와 가볍게 서너 번 도약하더니 순식간에 남쪽 거리에 당도했다.


   이 시각 단계방 남쪽 거리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아수라장이었다. 여러 저택의 측문과 뒷문이 지전에 부딪혀 부서졌고, 가복과 호위들은 굶주린 늑대에게 쫓기는 양 떼 꼴이었다. 사람을 부르짖는 자, 주문을 외는 자, 화염과 횃불을 들고 다짜고짜 바닥에 불을 지르는 자들까지……. 불길한 화염이 치솟는 가운데 이미 네다섯 명이 바닥에 나뒹군 채 온몸이 지전으로 꽁꽁 둘러싸여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몇 명의 남의인들이 주위 담장과 솟아오른 가로등 대 위로 내려앉았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다른 이들과 차림새가 미세하게 달랐다. 허리에 선학 무늬를 어둡게 수놓은 은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각수탑은 황성과 바싹 붙어있는 수도의 최고 요충지인 만큼 탑을 지키는 자들은 모두 천기각 내에서도 손꼽히는 거물들이었다.


   그날 밤 각수탑 숙직을 서던 인물은 다름 아닌 수도에 주재하는 천기각 우부도통* 방전이었다.
   *우부도통(右副都统): '도통(都统)'은 본래 중국 역사에서 군대를 총괄하는 최고 군사 지휘관을 뜻하는 벼슬. 우부(右副)는 좌우(左右) 중 우측, 부(副)는 부관 또는 대리라는 뜻.
 

   방 대인은 떡 벌어진 어깨에 날렵한 허리,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큰 눈을 지녔다. 얼굴에는 구릿빛 풍상이 짙게 깔려, 장중한 짙은 푸른색 예복조차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야성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는 으스대는 현문의 반선이라기보단 차라리 강호를 떠도는 호방한 검객에 더 가까워 보였다.


   땅에 깔린 지전을 쓱 훑어본 방전이 품속에서 호각을 하나 꺼냈다. 한 치 남짓한 작은 호각이었건만 그 입에서 불려 나온 소리는 군대 나팔보다 더 낮고 육중하여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 같았다. 호각 소리가 채 지기도 전에 각수탑에서 또 한 무리의 남의인들이 소리를 따라 날아왔다.


   눈 깜짝할 사이 여섯 명의 인간행주가 단계방 남쪽 거리 골목에 모두 집결했다. 항간에 떠도는 말로는 각 청룡탑에서 숙직을 서는 인원이 다 합쳐 고작 일곱 명이라고 했다.


   안채 담장을 타고 넘어가 지전을 불태우려던 해평은 넋을 놓고 말았다. 남의인들이 순식간에 진을 치는 모습이 어찌나 현란한지, 허상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인간행주들의 몸놀림을 눈동자가 미처 쫓아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방전이 두 자 길이 남짓한 깃발을 뽑아 바닥을 향해 힘껏 내리꽂았다.


   '창' 하는 소리와 함께 대체 아귀힘이 얼마나 센지, 나무로 된 깃대가 두부를 썰듯 청석 바닥 돌을 뚫고 들어가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박혔다.
   그 깃발을 중심으로 여섯 사람이 선 위치를 경계 삼아 지면 위로 거대한 '선풍'의 소용돌이가 일더니 주변의 지전을 죄다 끄집어당겼다.


   지전들은 진법 안으로 빨려 들어가자마자 저절로 불이 붙었다. 발버둥 치듯 필사적으로 바깥을 향해 날아가며 한참을 엎치락뒤치락 밀고 당겼으나, 결국 속절없이 '선풍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느새 허공에는 불타는 나비 떼가 가득 차 한바탕 광란의 춤을 추었고 끝내 바스라진 재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본디 무색무형이던 선풍이 무수한 종이재와 연기를 감아 올리며 하늘을 뚫는 거대한 굴뚝으로 변모했고, 단계방 전체를 남성 밖 공장 지대처럼 시꺼먼 매연으로 가득 채웠다.


   족히 일 각*의 시간이 지나서야 거리를 메웠던 지전이 말끔히 타버렸다. 기세등등하던 광풍이 잦아들자 마차 안에서 곡을 하던 시체도 언제부턴가 입을 다물고 멈춰 있었다.
   털썩. 시신이 마차 밖으로 고꾸라지더니 잿더미가 된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야말로 진짜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약 15분
   **진귀진, 토귀토(塵歸塵,土歸土): 장례 의식에서 쓰는 표현으로, 영어 "ashes to ashes, dust to dust"와 같은 의미.

 

   남쪽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마치 단체로 기괴망측한 악몽 속으로 질질 끌려 들어간 것만 같았다. 후부 담장 위에 쪼그려 앉은 세자 나리를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감히 머리를 내밀지도, 입을 벙긋하지도 못했다.
   오직 단계방의 사치스러운 풍등만이 대낮처럼 밝게 빛나며 땅바닥에 어지럽게 널린 시신과 짓무른 핏덩이들 위로 창백한 은빛 테두리를 덧그려주고 있었다.

 

   이 밤, 화방도 소리를 잃고 금평 전체가 적막에 잠긴 가운데 능양하 맞은편에서 아득하고 흐릿한 딱따기 소리가 들려왔다.
   이경*이었다.
  *이경(二更):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오경(五更) 중 두 번째 시각으로, 밤 9시에서 11시 사이를 뜻함.


   방전이 해평을 힐끗 보더니 소매를 툭 떨쳐 그를 담장 위에서 떨어뜨렸다. "어느 집의 모자란 물건인지, 무슨 구경거리인 줄 아는가."
   그가 맨 먼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수결을 맺고 진을 쳤던 깃발을 거두었다. 담황색이던 깃발은 이미 새카만 숯덩이가 되어 있었고 깃발 끝에는 온전한 지전 한 장이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방전은 마치 경계하는 맹수의 왕처럼 다가가 그 지전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튕겼다. 파르르 떨리던 마지막 지전 한 장마저 그 순간 재로 변해 깃발에서 바스라져 내렸다.


   방전은 매미 날개처럼 얇은 장갑을 낀 뒤 바닥에 엎어진 이들을 하나하나 뒤집으며 검시했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저었다.
   생존자는커녕 바닥에 뒹구는 자들 중 온전한 형체를 유지한 자조차 몇 없었다. 살짝 뒤집기만 해도 부속품처럼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어림군을 불러와 일손을 돕게 하고, 심수탑으로 가서 조예를 이리 오라 일러라." 방전이 지시를 내리며 썩은 고깃덩이들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는 마차에서 떨어진 시체 곁으로 다가가 그 몸을 휙 뒤집었다. "남자, 스무 살 남짓……. 몸에 사적인 인장이 하나 있는데 새겨진 이름이…… '동장董璋'. 이자는 누구인가? 아는 자 있는가?"


   "홍려사경 동 대인의 적장자이자 황궁 현비 마마의 친정 조카입니다." 한 인간행주가 앞으로 나서며 낮게 아뢰었다. "길 하나만 건너면 동부입니다."


   "한창 젊은 나이인데 안타깝군." 방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덧붙였다. "여봐라, 댁에 가서 부고를 전하거라...... 말조심하고, 유가족을 괜히 자극하지 않도록 해."
   말을 마친 그가 몸을 일으키더니 남은 두 명의 남의인을 지목했다. "너희 둘은 주변 집들을 돌며 통보해라. 난동을 부리던 사수는 멸했으니 피해를 본 가솔들에게는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고 전하고. 단, 시신은 절대 손대지 말고 우리가 수습하게 둬라. 간 김에 혹시 평소와 다른 기이한 점을 목격한 자가 있는지도 탐문해 보아라."


   어림군은 쏜살같이 출동해 남쪽 단계방 일대를 겹겹이 철통같이 에워쌌다. 방전의 지휘 아래 현장을 치우고 시신을 수습하며 사기를 몰아내는 작업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룡심수탑의 조예도 도착했다.


   "도통, 또 누군가 음친을 빼앗겼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조예는 사방에 널린 참혹한 시신들을 보고 경악했다. "대체 몇 명이나 죽은 겁니까?"

 
   "음친을 빼앗겨 죽은 건 그 하나 뿐일세." 방전이 동장의 시신을 턱으로 가리켰다. "마차 안에 저자뿐만 아니라 시독에 절인 지전이 한 수레 가득 실려 있더군. 사람을 보자마자 달라붙어 살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었지. 밤중인 데다 단계방에 사람이 적어 망정이지, 백주대낮에 동쪽 번화가 한복판에서 터졌다면 얼마나 끔찍한 재앙이 벌어졌을지 모르겠군."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어림군이 동부의 마차를 조심스레 뜯어내 해체했다. 차 지붕 쪽에 선혈로 그려진 문양이 드러났는데 도통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뒤엉킨 무늬가 마치 똬리를 튼 독사 같기도 했다. 한참 쳐다보면 머리가 어지럽고 메스꺼움이 치밀어 올랐다.


   "비봉주로군." 방전이 뒷짐을 지고 채 마르지 않은 핏자국을 훑어보았다. "내 짐작이 맞았어. 지전을 조종한 건 바로 저 망자…… 동장이 죽기 직전 벌인 일이다."

 
   조예가 얼굴을 굳혔다. "범인은 악주를 그릴 수 없습니다."
   "당연하지." 방전이 대답했다. "음친을 뺏은 사수가 그를 조종해 그리게 만든 게야."


   "하지만 도통, 그저 망자가 죽기 전 입을 열어 곡을 하게 만드는 것과 놈을 조종해 악주로 살인을 저지르게 만드는 건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게 아닙니다."


   "음." 방전은 무슨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보자면 이 음친을 빼앗은 사수의 수위가 최소한 축기 중기는 된다는 뜻인데. '명혼서*'를 쓸 때 쓰는 시체 역시 갓 죽은 새것일 리가 없지. 적게 잡아도 50년 이상 비법으로 제련한 묵은 시체를 썼을 텐데……. 기이하군. 고작 사람 하나 죽이자고 들이는 대가 치고는 수지타산이 안 맞게 너무 비싸지 않나."
   *명혼은 사후의 결혼으로, 명혼서는 영혼결혼식의 혼인 서약서.


   50년 묵은 술도 구하기 힘든 판에 50년 동안 비법에 절인 시체라니. 동 공자의 아버지 연배조차 쉰이 안 되었을 터. 그토록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고작 문약한 공자 하나를 죽일 자가 어디 있겠는가?
   동장의 저 손바닥 두께도 되지 않는 작은 체구라면 칼 한 번에 죽지 않겠는가?
   그토록 엄청난 공을 들여 한 짓이 고작 죽기 전에 자신을 위한 장송곡이나 부르게 하고 덤으로 가는 길에 길동무 삼아 불쌍한 마부와 하인 몇 명의 목숨을 곁들여 가져가게 한 것이란 말인가?


   "도통." 그때 주위를 탐문하고 돌아온 남의인이 보고를 올렸다. "이국공부는 일찍 쉬고 있었는데, 공작 어르신께서 고령이시라 한밤중에 이런 변고를 감당하시기 버거울 듯하여 집안사람들이 감히 깨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부 손 시랑, 대리사 육 대인 댁에서는 모두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시신은 꺼내어 옮겨두었고, 사기를 쫓는 법진을 쳐준 뒤 안신 부적도 남겨두었습니다. 영녕후부는 다행히 문을 열지 않아 무사했으나, 하필 그 집 세자가 마침 밖에서 귀가하던 길에 동부의 마차와 정면으로 마주쳤고 조금 전 지전이 사람을 죽이는 참상을 우연히 목격했다고 합니다……."


   방전과 조예가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아까 담장 위에 걸터앉아 구경하던 그 머저리?"
   "영녕후 댁의?"


   방전이 힐끗 그를 쳐다보자 조예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어차피 조금만 조사하면 금방 드러날 일을 굳이 숨겨봤자 소용없다 싶어 순순히 입을 열었다. "어젯밤 화방 나루터에서 죽은 이가 숨이 끊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도 영녕후 세자였습니다. 오늘 아침 제가 가서 한 차례 탐문을 마쳤지요."


   "당장 후부로 가서 통보해라." 방전이 명령했다. "사안이 중대하니 수고스럽더라도 세자 나리께서 직접 나와보셔야겠어."
 


 
 
작가의 말
 
: 소띠 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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