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est 太岁(태세) 제6장 진강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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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岁》priest ^第6章^ 最新更新:2021-02-14 11:00:00 晋江文学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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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무렵,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해평이 묵고 있는 객방 뒤뜰에 내려섰다. 바로 방전과 조예였다.


       “죽은 자 동장이 어제 국자감에서 돌아온 뒤 성 밖으로 나갔습니다. 겉으론 춘유*라 했지만 사실은 성묘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조예가 성 밖에 외실을 두고 살던 동 공자의 일을 간략히 방전에게 보고했다. “어영군이 그가 생전에 타던 마차 안에서 붉은 종이에 쓴 혼서 한 장을 발견했는데 그 혼서에 적힌 생년월일시가 그가 뿌린 지전에 적힌 것과 같았습니다. 전부 그 외실 여인의 것이었습니다.”
       “오. 저승의 연애 빚이로군.” 방전이 싸늘하게 말했다. “이 동 공자란 작자는 성묘하러 간 게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세외금옥’이 들통날까 두려워 일부러 정리하러 간 거겠지?”
       *봄 나들이


       현은산은 곤륜 등 다른 선문보다 제자의 깨달음을 더 중시했다. 그래서 대선에서는 영지가 트이지 않은 어린아이는 뽑지 않았다. 남자는 반드시 열여섯을 넘어야 했고, 여자는 계례를 마쳐야 했다.
       선도의 길은 멀고 속세의 인연은 걸림돌이 되기 쉬웠다. 선문에서는 참가자에게 혼인을 금했다.
       하지만 이 대선은 10년에 한 번뿐이라 금평의 세가 자제들은 매번 곤혹을 치렀다. 대선 직전마다 이름 없는 사생아들과 그 사생아의 이름 없는 어미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방전은 이미 그런 일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었다.
 

       “묘…… 청소는 끝냈겠죠.” 조예가 한숨을 쉬며 낮게 말했다. “어제 동장의 마차를 몰던 마부가 바로 그 외실 여인의 생부였습니다.”
       방전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 마부가 마차 안을 열자마자 ‘봉주蓬咒’에 가장 먼저 부딪혀 죽은 그 사람인가?”
       “맞습니다.” 조예가 말했다. “그 마부가 죽지 않았다면 반드시 그를 감옥에 압송해 철저히 조사했을 겁니다.”


       “마부 집안에 다른 식구는 없나?”
       “없습니다. 그는 늙은 홀아비였고, 외동딸이 하나 있었는데 올 초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집안에서 태어난 하인이었고, 평소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라 마차를 모는 일 외에는 사람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습니다. 거처를 수색했지만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다만 침대 밑에 재가 잔뜩 쌓여 있었으니 태울 수 있는 건 다 태운 모양입니다…… 도통, 제 생각엔 이건 확실히 그 사수들이 쓰는 상투적 수법입니다.”
 

       출신이 천하고 혼자 살며 사람들과 교류가 없는 자.


       방전은 미묘하게 ‘음’ 하고 소리를 내며 객방으로 다가가 방 안의 기척을 들었다. “잘 자는군. 이 녀석 제법 침착해.”
       “인과수 여덟 마리의 감시 아래에서도 이렇게 편히 잘 수 있는 걸 보면 정말로 속에 꿍꿍이가 없는 걸지도 모릅니다.” 조예가 말했다. “이렇게 조사해보니 동장의 죽음은 아마 그 마부와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만약 인과수도 이 영녕후 세자에게 별다른 문제를 못 느꼈다면 그건 정말로……"


       방전은 두 손을 뒤로 하고 담담히 그를 바라보며 얼굴에 감정을 읽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조예는 그의 표정을 살피고는 곧장 말을 바꿨다. “하지만 두 번이나 그가 그런 현장을 목격했다는 건 너무도 공교롭습니다. 제 생각엔 그래도 이 후부 세자가 평소 어떤 사람들과 어울렸는지 조사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다행히도 모두 금평성의 잘 알려진 집안들이니 어렵진 않겠지요.”


       방전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조씨 집안 출신답군. 물 한 방울 새지 않아.
       조예의 한마디 한마디는 겉으로는 중립적인 듯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표정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영녕후 세자를 사건에서 점점 떼어내고 있었다. 말 속에는 해평의 집안이 결백하다는 암시를 줄곧 담아내며 설령 이 사건에 휘말렸더라도 수동적이고 무고하다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좋다. 그럼 자네가 책임지고 조사하게. 나는 관여하지 않겠다. 아이고, 난 촌놈이라 자네 같은 대가문 출신들처럼 못 따라가겠군. 단계방의 그 온갖 고모, 숙부 관계는 난 영영 모르겠어.” 방전은 불 꺼진 객방을 힐끗 바라보고는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이 미남은 사람 복도 꽤 있군.”


       사람 복 있는 미남 해평은 해가 뜰 때까지 단잠을 잤다.
       그는 늘 밤엔 자지 않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푹 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몸 구석구석까지 편안해졌다. 막 일어나 호종을 불러 시중을 들게 하려는데, 갑자기 뭔가 딱딱한 게 엉덩이 밑을 받쳤다.


       해평은 몽롱한 상태로 한참을 더듬다가 엉덩이 밑에서 작은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그제야 장리가 자신에게 선물을 줬던 게 떠올랐다.
       전날 오후가 너무도 황당하게 흘러가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해평이 단숨에 주머니를 풀어 안을 뒤져 보니 붉은 옥 조각 하나가 나왔다. 빛깔은 혈옥에는 못 미쳤고 크기는 손톱만큼 작으며 조각도 특별히 새겨진 게 없어 보기엔 오히려 비단 주머니보다도 값나가지 못해 보였다. 다만 옥에는 은은한 향이 배어 있었고 윤기가 응고된 지방처럼 맑아 오래도록 여인이 몸에 지니며 길러온 물건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몸에 지니던 물건을 남에게 준다는 건 무슨 뜻일까?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해평은 괜히 좀 껄끄러운 기분이 들어 막 한쪽으로 던져버리려다 옥의 반대쪽 면에 새겨진 각인이 손끝에 닿았다.


       그는 옥을 뒤집어 보았다. 그 면에는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영안 진씨 백작, 정축년 4월 9일 묘시.”


       영안 진씨? 누구지?
       이 옥에는 꽃 한 송이조차 새겨져 있지 않은데 무슨 낙관이야? 게다가 낙관은 대개 연월까지만 적고 가끔 날짜까지 적어도 시까지 적진 않는데, 이거 무슨 생년팔자라도 되나……
       잠깐. 생년팔자!


       해평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니...... 이건 낙관이 아니라 본적과 이름, 생년팔자였다!


       대완에는 옛날 풍습이 하나 있었다. 규중 아가씨가 어려서부터 ‘생진옥’을 몸에 걸어 길렀다가, 혼담이 오가고 삼매육빙* 절차가 끝나면 여자가 자신의 생진옥을 남자에게 주었고, 남자는 그 옥을 받은 뒤 진주 한 항아리를 답례로 보내 ‘구슬이 맞닿아 옥이 합쳐진다’는 뜻을 담았다.
       즉, 생년팔자가 새겨진 생진옥은 혼서와 다름없었다.
       *삼매육빙(三媒六聘): 중국 전통 혼례 절차. 세 차례의 중매 절차와 여섯 가지의 예물 전달 절차를 뜻한다. 각 절차의 세부 내용은 지방과 시대에 따라 다르다.


       들리는 말로는 왕보상이 죽은 시신 위에서도 이런 생진옥이 떨어져 나왔다고 한다. 전에 조 존장이 장왕부에서 신신당부하던 말이 아직 귓가에 생생했다. 사주팔자가 적힌 혼서 비슷한 물건은 받지 말라고!


       해평은 벌컥 그 옥을 침대 발치로 내던지고, 벌떡 일어나 온몸을 마구 두드리며 때리기 시작했다. 마치 피를 돌리고 어혈을 풀어야 강시로 변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듯이.
       하룻밤이 지나면서 그는 동장의 죽어서 눈도 감지 못한 그 일그러진 얼굴을 거의 잊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생진옥 같은 수상한 돌덩이로 인해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아직 장인어른이 될 기회도 없었는데, 강제로 귀신의 사위가 되라니? 그것도 죽어서 머리도 다 밀리고 두개골까지 보여줘야 한다고?
       이게 미남이 맞이해야 할 팔자란 말인가?


       안 돼. 해평은 속으로 외쳤다. 이 혼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


       그는 신발도 신지 않고 막 문밖으로 뛰쳐나가 남의 존장님들에게 ‘원앙을 떼어내 달라’고 간청할 작정이었다.


       호종은 바깥방에서 침상을 정리하다가 자기 집 도련님이 폭죽처럼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놀란 나머지 내뱉던 하품도 반쯤 날아가 버렸다.


       “도련님, 무슨……”


       도련님은 한 손으로 객방 문턱을 짚고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그 말을 끊었다. 그 자세 그대로 잠시 고민하다가 갑자기 몽유병자처럼 몸을 돌려 다시 방 안으로 돌아갔다.


       해평은 안쪽 문에 이르러서야 문득 떠올랐다. 그 옥은 장리가 준 것이었다.
       장리가 자길 해치려 했다니…… 그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첫째,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남자라고 믿었기에 여인이 감히 자신을 해치려 할 리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는 장리에게 충분히 잘해줬다고 생각했다. 가슴과 등이 훤히 드러나는 여장까지 대중 앞에서 했고 금평 전체의 죽어 눈을 감지 못한 여귀들까지 압도했는데, 더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만에 하나 장리가 그를 얻지 못해 원한을 품고 해치려 했다 쳐도 술에 쥐약을 한 번 타기만 해도 여덟 번은 죽일 수 있을 텐데 굳이 미리 그의 저승 혼례까지 마련해둘 필요는 없었다.


       해평은 땀수건 너머로 그 붉은 옥을 주워들며 의아해했다. 장리가 자신을 해치려 한 것이 아니라면 이 물건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때 창밖에서 조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평은 그 존장이 호종에게 묻는 소리를 들었다. “너희 세자는 일어나셨느냐?”
       여기는 천기각이지 그의 집이 아니어서 너무 늦게까지 꾸물거리는 건 좋지 않았다. 해평은 황급히 옥을 주머니에 넣고 대충 세수한 뒤 사람을 만나러 나왔다.


       조 존장은 장왕의 고화를 받은 뒤 겉으로는 거리낌을 보였지만, 사적으로는 해평에게 한결 온화했다. 먼저 좋은 말로 이런저런 변명부터 늘어놓았다. “세자를 총서에 잡아둔 건 단지 절차상 필요한 일이었고 세자를 의심한 건 아닙니다.” 그런 다음 작은 자기병 하나를 건넸다. “후야께서 심장이 약하시다 들었습니다. 어젯밤 저희가 부득이하게 밤늦게 폐를 끼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호심단 몇 알은 우리 집 내문의 노조종께서 직접 만드신 것으로, 약성이 순하고 평온해 범인도 먹을 수 있습니다. 부친께 전해드리십시오. 제가 언젠가 반드시 사과 인사를 드리러 가겠습니다.”


       해평은 그것을 받아 들고 감사를 표했다. 조예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 나이에 큰일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마음에 평정을 유지하시는 군요. 언젠가 큰 장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해평은 그 말을 듣고 빈말로 여기며, 조 존장이 어젯밤 틀림없이 자신이 자는 모습을 엿봤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곤히 잠들었을 때만 '평정'과 관련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물었다. “존장님, 제 혐의는 이제 거의 씻긴 거겠죠?”


       조예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잠시 굳었다. 이 방탕아가 눈치가 빠른 건지 없는 건지 한 번도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어왔다. 그가 말했다. “세자의 집안은 깨끗하여 본래 혐의 같은 건 없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저희가 하룻밤 묵게 한 것은 그저 세자께서 모르는 사이에 어떤 사악한 기운에 물들까 봐서였습니다.“
       해평은 순순히 말을 고쳐 말했다. “그럼 존장님, 제 결백은 아직 유지되는 거죠? 더럽혀진 건 아니죠?”


       조예는 말을 잃었다.


       “세자께선…… 당장은 괜찮습니다.” 조 위장은 역시 노련했다. 애써 변함없이 평온하고 단정한 보살 같은 표정을 유지하며 부드럽게 일렀다. “일단 집에 돌아가십시오. 더 이상 집안 식구들 걱정하게 하지 마시고요.”


       해평은 조 존장이 건넨 작은 자기병을 손에 쥐며 속으로 생각했다. 삼형이 그날 준 짠지 껍질 같은 그 잔권이 대체 얼마나 귀한 것이기에 저 이름난 인간 행주가 앞장서서 자신에게 아부를 다 할까?
       그는 속으로 음흉하고 복잡한 마음이 뒤섞여 쿵쾅거렸다. 이 일을 곱씹어보니 장왕부의 그 그림은 조 존장에게 귀중한 선물이라기보다는 달콤한 약점에 가까운 듯했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레 한 발 더 나아가며 물었다. “그런데 존장님, 전 그래도 무서워요. 혹시 그…… 뭐랄까, 몸을 지켜주고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물건을 하나 주실 수 없을까요?”


       조예는 잠시 멈추더니 해평을 바라보는 눈빛이 약간 가라앉았다.


       해평은 일부러 귀를 긁적이며 시치미를 뗐다. “어제 남가에 온통 지전이 뿌려져 있던 걸 생각하니 집에 돌아가기가 겁나더라고요. 다 치웠다곤 해도 혹시라도 돌 틈, 벽돌 틈, 구석진 데 남아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아이고, 오늘도 장왕부에 밥이나 얻어먹으러 가야 할까 봐요……”


       그의 말은 조예가 눈앞에 내민 한 자루의 종이부채에 의해 끊겼다.


       부채의 뼈대는 단정하고 소박했으며, 부채를 펼치자 네 귀퉁이에 상운 무늬가 있었다. 중앙에는 머리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눈을 가진 괴수가 그려져 있었다. 바로 전날 밤 해평 방 안에 있던 ‘자수’와 ‘벽화’였다.
       해평이 부채를 펼치자마자 종이 위의 괴수가 스스로 움직였다. 먼저 앞발로 땅을 파듯 하더니 고양이나 개가 똥 묻는 것 같은 동작을 하곤 쏜살같이 부채 뒷면으로 달려갔다!


       “이건 무슨 보물이죠?”
       “보물이 아닙니다. 천기각에서 모시는 ‘인과수’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남성 성좌 아래의 신수이며, 악을 증오하는 성질을 지녔습니다.” 조예가 말했다. “종이, 비단, 벽…… 땅을 제외한 글씨나 그림이 있는 어디든 드나들 수 있습니다. 그림이 없는 곳이라도 아무거나 묻혀서 글씨 몇 자를 쓰시면 됩니다. 웬만한 사물은 인과수를 만나면 불에 덴 듯 괴로워할 것입니다. 만약 또 어젯밤 같은 지전을 만나면, 이 부채로 부쳐서 쫓으시면 됩니다.”


       해평은 ‘아이’ 하고 소리 내며 그 종이 부채를 품에 넣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하옵니다 존장님!”
       조예는 더 이상 상종하고 싶지 않아 이 녀석이 빨리 꺼지길 바랐다. “혹시 또 뭔가 떠오르면 사람을 시켜 한마디 전하십시오.”


       이 말에 해평은 자신이 품에 넣어둔 그 생진옥이 떠올랐고, 막 그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푸른 옷을 입은 한 기마가 앞뜰로 뛰어들어왔다. “으. 조 사형, 도통 계십니까?”


       조예가 대답하기도 전에 방전이 담벼락에서 바로 쑥 튀어나왔다. “뭐 이렇게 허둥대느냐. 무슨 일이냐?”


       와, 전설 속의 벽통술이잖아!
       해평은 눈이 휘둥그레져 방전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문이 막혔다. 저런 능력이 있으면 한밤중에 귀가할 때 아무곳으로나 들어갈 수 있잖아. 절대 아버지한테 잡혀서 매 맞을 일은 없겠네!


       그러자 그 푸른 옷의 사내가 말에서 뛰어 내리며, 품속에서 화려한 지첩을 꺼냈다. “도통, 조 사형, 이것 좀 보십시오.”
       "뭔가?"


       해평이 고개를 내밀어 힐끗 보았다. “취류화의 감화간?”
       “맞습니다. 감화회 마지막 날의 귀빈석 표입니다.” 남색 옷의 반선이 말하며 그 지첩을 비틀어 펼쳤다. 지첩은 이중으로 되어 있어 찢어 보니 그 아래에 비틀린 어두운 붉은 피 글씨가 숨겨져 있었고, 거기엔 생년팔자가 적혀 있었다!


       “내게 가져와 봐라.” 방전이 눈을 가늘게 뜨며 해평을 돌아보며 물었다. “세자도 이걸 받은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해평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초대장이 필요 없습니다. 얼굴로 그냥 들어가지요.”


       “허, 내가 경솔했군.” 방전은 숨김없이 비꼬더니 곧 얼굴을 싸늘하게 굳히고 호령했다. “취류화 주인, 보모, 관리들, 이 청첩을 쓴 놈, 붓과 종이를 산 놈까지 전부 끌어와라! 진옥에 가둬 엄중히 심문하겠다!”


       해평은 멍해졌다.


       대완의 아이치고 ‘진옥镇狱’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장난꾸러기들은 어릴 적 늘 ‘말 안 들으면 진옥에 가둔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들리는 말로는 그곳이 천기각에서 요사스러운 것을 가두는 곳으로, 그 안에 십만 마리 요괴가 밤마다 울부짖으며 범인이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이……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하지만 그 외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조예가 물었다. “취류화를 봉쇄합니까?”
       “봉쇄하지 않으면 뭘 기다리나? 이런 더러운 곳은 진작 닫았어야지!” 방전이 빙 둘러 욕하고는 다시 귀찮다는 듯 해평을 곁눈질했다. “세자가 비슷한 걸 받은 적 없다면 일단 돌아가지. 아니면 다른 일이라도 있는가?”


       해평은 아무 일도 없었기에 발밑에 바람이 이는 듯 빠르게 시종 호종을 이끌고 떠나갔다.


       이제야 그는 깨달았다. 천기각의 ‘객방’은 아무나 묵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황자 사촌이나 귀비 고모 같은 뒷배가 없으면, 사업이 아무리 크고 인맥이 아무리 넓어도 사악한 기운이 묻었다는 의심만으로 곧바로 진옥에 끌려가 혼을 조사당한다.


       그러니...... 부평초 같은 가희와 기녀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해평은 눈 깜짝할 사이에 결단을 내렸다. 이 옥의 일은 숨겨야 한다.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이렇게 민감한 물건을 존장들이 알게 된다면 분명 그녀를 진옥에 끌고 갈 것이다. 장리의 작은 몸으로 그곳에 한 번 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올 수 있겠는가?
       그는 아직 그 생진옥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성급하게 그녀를 죽게 할 수는 없었다.


       감화회 위의 번화는 마치 끓는 기름불 같았다. 눈부시게 번성하다가 이내 질풍처럼 사라졌다. 어젯밤의 황금굴은 오늘 아침 쥐구멍이 되었고 한 번 휩쓸리자 원숭이 떼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출입구의 채색 비단마저 빛을 잃었다.
       크고 작은 관리 중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진옥에 끌려갔다고 했다.
       건물 안의 아가씨들은 천한 신분이라 사람 취급도 못 받아 대옥에 끌려가지 않았다. 다만 취류화에서 기르던 고양이, 개, 앵무새와 함께 누각 안에 갇혀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혹여나 조사를 위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이건 해평이 천기각에서 돌아온 후 호종이 나가서 알아온 소식이었다.


       해평이 물었다. “장리는? 그 애도 건물 안에 갇혔어?”
       “장리 아가씨는 없었어요.” 호종이 대답했다. “공교롭게도 아침 일찍 남성 밖으로 나갔대요.”


       “남성 밖에 왜 나갔는데?”
       “전에 남성묘에서 향 하나를 피워 소원 빌었는데 정말로 영험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에 동백화관을 얻게 된 거래요. 오늘은 그걸 보은하기 위해 다시 갔대요.”


       해평은 이 말을 듣고는 거의 뒤로 넘어갈 뻔했다. ‘남성묘’는 금평성 남쪽 십여 리에 있는 곳으로, 국교 현은파의 개산 조상 남성선존이 승천한 곳이라 전해진다. 그 현은산은 ‘남녀 수수 불친’을 천조에 써넣을 판인데 감히 남성묘에서 산차관을 빌었다고?


       “영험은 개뿔! 정말 영험했으면 남성 그 노인장이 진작 벼락이나 쳐서 걔를 다 구워버렸겠지! 대체 무슨 생각이야?”


       호종이 말했다. "도련님, 그럼 제가 길에서 아가씨를 마중 나가서요, 장리 아가씨한테 어디 잠시 숨어 있으라고 할까요? 이번 취류화 사건도 시끄럽잖아요……"


       “그래.” 해평이 망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장리를 만나거든 나 대신 물어봐…… 어제 나한테 준 그……”
       해평이 말을 멈췄다. 한참이 지나도 다음 말은 나오지 않았다.
       호종은 한참을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가씨가 어제 도련님께 뭘 드린 거예요?”
 

       “됐어, 신경 쓰지 마. 내가 직접 다녀올게.” 해평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말했다. “지금 나가면 해 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어.” 그러고는 장화 한 짝을 쑥 신었다. “창문 다 닫아. 아버지가 물으면 천기각에서 잠을 설쳐서 낮잠 잔다고 해.”


       “아니, 도련님…… 아이고, 도련님!” 호종은 자그마한 얼굴에 이목구비를 구깃구깃 일그러뜨리며 말렸지만, 해평은 이미 다시 뛰어나가고 있었다.
       멀쩡한 세자 도련님이 다리만 괜히 길어 문제였다.


       해평은 장리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점에 그녀가 이런 물건을 줬다는 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보상과 동장은 모두 그를 만난 뒤에 일이 터졌고 사건의 발단이 된 감화간은 취류화에서 나왔으며, 이유도 없이 생진옥을 준 장리는 하필이면 이때 도성을 떠나 취류화 수색을 피했다.
       이게 모두 우연이라면 그 우연이 너무 지나쳤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동장의 죽음을 직접 보고 이런 괴이한 일에 휘말렸다면 진작 생진옥을 천기각에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세자 도련님은 작사*의 길에서 남다른 경지를 이뤘기에 애초에 상식 따위는 따르지 않았다.
       그는 입을 다물고 스스로 장리를 찾아가 이 옥의 내막을 캐기로 결심했다.
       *作死 목숨을 거는 짓


       설령 이 물건에 정말 문제가 있더라도 앞선 두 번의 죽음은 모두 한밤중에 일어났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기만 한다면 천기각에 달려가 구조를 요청할 시간은 있다. 그런데 이 옥이 문제없는데 단지 생년월일시가 하나 더 적혔다고 호들갑 떨며 멀쩡한 여인을 진옥에 처넣는다면…… 그게 진짜 배짱 있는 사람이 할 짓인가?


       그렇게 팔근짜리 배짱과 자기 나름의 논리를 품고 해평은 홀로 남성을 나섰다.


       남성 안쪽을 빠져나가면 대운하가 나왔다. 운하를 따라선 허름한 노무자 숙소와 연기 자욱한 공장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안의 화기는 밤낮없이 ’윙윙‘ 소리를 냈다. 강가 가까운 물에는 녹색 기름층이 떠 있고 비린내가 진동했다.
       강가에는 잡상인들이 잡곡전병을 팔고 있었고, 상인들은 죽지도 살지도 않는 기운으로 “한 푼에 두 개!”라 외쳤다. 웃통을 벗은 인부들은 강가에 쭈그리고 앉아 더러운 물에서 피어오른 짠맛과 비린내를 안주 삼아 그것을 씹고 있었다.


       사방이 온통 연기와 오염으로 가득했지만, 오직 남산으로 향하는 ‘조성로’만은 티끌 하나 없었다.
       남성묘로 향하는 그 산길 양옆에는 한백옥으로 만든 난간이 사람 키보다 높이 세워져 있었고, 거기 새겨진 것은 길상수나 구름 문양이 아니라 먼지와 악귀를 쫓는 명문이었다. 난간 아래에는 연녹색 벽장영석이 박혀 있었고, 남성 바깥의 드문 봄 풍경과 어우러져 마치 인간 세상에 잘못 내려앉은 선로仙路처럼 보였다.


       해평은 성 안을 빠져나오자마자 코를 막고, 가슴을 부풀려 길게 숨을 참았다. 그리고 말을 몰아 조성로에 오르자 그제야 코를 열고 숨을 들이쉬었다.
       남성묘에 가려면 왕복 모두 조성로를 지나야 했다. 시각을 따져보면 지금쯤 장리가 돌아오는 길이어야 하니, 중간쯤에서 마주칠 수 있을 터였다. 장리의 마부 노장은 심한 곱사등이라 이리 떨어진 곳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길에 사람도 많지 않으니 절대 놓칠 리 없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해평은 남성묘 산 아래까지 달려갔지만 장리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이때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명절도 아니고 초하루나 보름도 아니었던 탓에 남성묘에는 향객이 거의 없었고 묘 바깥 낙마정에는 수레와 말도 몇 대뿐이었다. 해평이 이리저리 물어봤지만 다들 장 곱사등이를 본 적 없다고 했다.
       해평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호종 그 자식, 믿을 만한 거야?’


       그때 옆에서 누군가 끼어들어 말했다. “곱사등이 마부 말인가? 내가 봤다네. 낙마정에는 머물지 않았지.”
       해평이 돌아보니 찻집 근처에서 한 노인이 우마차를 매면서 장사를 정리하고 있었다.


       노인은 일을 하며 중얼거렸다. “나보다도 등이 더 굽은 그 친구 말이지, 물건 사고는 남쪽으로 갔네. 돌아오는 건 못 봤어.”
       “뭘 샀습니까?”
       “꽃.” 노인이 두 손을 모아 해평에게 보여주듯 했다. “오늘은 흰 꽃이 많아서 못 팔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전부 사갔지. 저승 사람에게 오늘 손님이 있었나 보더군.”


       저승 사람……
       해평은 멍해졌다. 노인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남쪽을 바라봤다. 그곳은 성남의 ‘안락향’이었다.


       ‘안락향’은 묘지 구역으로, 제법 단정하게 관리되며 수시로 지키는 사람이 있었지만 정식 무덤지는 아니었다. 묘비에는 대부분 가명이 새겨져 있었다. 공자와 왕손 곁에서 사라진 비첩, 절개를 잃고 자결한 규수, 귀인의 뒷문으로 실려 나간 첩, 화방에서 시들어간 명화들. 드러낼 수 없고 이름 남길 수 없는 이들이 세상과 작별하면 모두 이곳으로 오게 되는 것이다.


       장리가 남성묘에 가서 보은하겠다던 말은 거짓이고 사실은 몰래 안락향에 성묘하러 간 건가?


       해평은 꽃 파는 노인에게 그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곧장 말을 몰아 안락향으로 향했다.


       해평은 죽은 사람을 꺼리지 않았다. 게다가 안락향은 무서워할 곳도 아니었다. 비록 묘지였지만 이미 금평의 명소가 되어 있었고 매년 청명과 한의 명절이면 한량 공자들이 무리 지어 와서 안락향에 지전를 태우며 ‘향혼을 추모한다’는 미명 아래 놀곤 했다. 그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고 와서는 반드시 시 한 수를 남겼다. 그래서 오래된 회화나무와 고목에는 온갖 얼토당토않은 추모문이 잔뜩 붙어 마치 무좀처럼 번졌고 그나마 있던 음기도 다 날아갈 지경이었다. 


       해평이 안락향에 도착했을 때, 습기가 차서 그런지 숲속에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가 말을 멈추자 말은 코를 훌쩍이며 앞발로 땅을 연달아 구르며 물러나려 했다.
       동물은 시신이 묻힌 곳에 특히 민감했다. 해평은 개의치 않고 목청을 높여 수위에게 외쳤다. “육야 계세요?”


       육야는 안락향 밖의 작은 초가집에 사는 무덤지기 홀아비였다. 매달 스무 근의 조와 반 관의 돈을 받으며, 일이 없을 땐 자기 마당에서 닭을 키우고 작은 채소밭을 가꾸었다.
       이때 닭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노인만 홀로 허리를 굽히고 채소밭의 흙을 고르고 있었다.


       아마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가 땅을 파는 동작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녹이 슬어 멈출 듯한 기계처럼.


       “이봐요, 영감님. 잠깐 쉬시죠.” 해평은 주머니에서 잔은 한 닢을 꺼내 손가락으로 튕겨 육야의 마당 안으로 던졌다. “여쭐 게 있습니다. 오늘 누가 왔나요?”


       육야는 발치에 떨어진 은구슬을 바라보다가 동작을 멈추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평이 물었다. “아가씨 한 명, 마부는 곱사등이 맞죠? 떠났나요?”
       “응.” 육야는 아마도 나이가 들어 말을 더듬었는지 한참 만에 “응” 하고 대답하더니 다시 두 글자를 더 내뱉었다. “안 갔어.”


       “알겠어요…… 아 참, 그들이 누구 성묘하러 온 건지 아세요?”
       무덤지기는 귀가 어두워 해평이 두 번이나 물었지만 듣지 못한 듯 그저 땅 파기에 몰두할 뿐이었다.


       “쳇, 영감탱이.” 해평은 더는 참지 못하고 해가 저무는 걸 보자 노인과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말을 몰아 숲속으로 들어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말은 숲에 들어가려 하지 않더니 이번에는 주인이 재촉하지도 않았는데 고삐를 늦추자마자 스스로 네 다리를 뻗어 숲 속으로 질주해 들어갔다.


       안개는 점점 짙어졌다. 숲 속으로 들어간 해평과 말은 금세 자취를 감추어 마치 안개에 삼켜진 듯했다.
       곧 이어 진한 안개가 숲속에서 스며 나와 무덤지기의 오두막을 에워쌌다.


       고독한 무덤지기는 쇠스랑으로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진흙을 두드리고 있었다. '퍽'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에서 뭔가가 흙 구덩이에 떨어져 굴러나갔다……


       그건 땀방울이 아니었다. 탁한 안구였다.


       노인은 여전히 쇠스랑을 한 번, 또 한 번 휘두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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