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est 太岁(태세) 제2장 진강 원문
https://www.jjwxc.net/onebook.php?novelid=5502413&chapterid=2

《太岁》priest ^第2章^ 最新更新:2021-04-13 11:03:14 晋江文学城

该作者现在暂无推文 支持手机扫描二维码阅读 打开晋江App扫码即可阅读 0 0

www.jjwxc.net

 
 

   대선년. 황성 턱밑에서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조정 고관의 아들은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염라대왕을 뵈러 갔다.  
   염라대왕은 심지어 한밤중에 그를 도로 돌려보내, 사람들 앞에서 길하고 상서로운 민간 소곡을 부르게 함으로써 제도의 미인을 선발하는 밤에 색다른 빛깔을 더해주었다!
  

   마침 성방군 순찰 소대가 이곳에 이르렀다가 왕보상의 죽은 꼴을 보고는 큰일이 났음을 직감했다. 그들은 즉시 구경꾼들을 물리치고 천기각에 통보했다.


   이른바 '천기각'은 국교 현은의 외문에 속하는 기관이었다.
   현은산의 선존들은 수행에 전념하여 평소 속세에 잘 내려오지 않았기에, 범속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천기각에서 대리했다. 그리하여 천기각은 '인간행주人间行走'라고도 불렸다.  
   '인간행주'는 한쪽 발을 선문에 걸친 '개규기*' 수사들을 뜻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그들은 영기를 몸속으로 끌어들일 수는 있지만 아직 진정한 축기를 이루어 도에 들지는 못한 상태라고 했다. 속세에서는 보통 그들을 '반선'이라 불렀고, 공무를 볼 때 푸른 옷을 입었기에 민간에서는 또 '남의반선'이라고도 칭했다.
   *개규기(开窍期): 선협 세계관의 기초 수행 단계. 기의 흐름을 뚫어(개규) 깨달음을 얻는 초기 단계의 수사를 뜻함.


   개규기 수사의 수명은 일이백 년에 달하고 각종 신기한 수단을 부릴 줄 알았으며, 군왕을 뵈어도 엎드려 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로 선문을 받들고 마를 퇴치하여 도를 지켰고, 대완에 주재하며 사직의 평안을 보위하도록 국교에서 파견한 이들이었다. 평소 조정의 관할을 받지 않으며 편의에 따라 천 명 이내의 지방 주둔군을 동원할 권한마저 있었다.


   천기각의 '인간행주'는 매우 빨리 도착했다. 금평성에는 천기각 본서 외에도 일곱 곳의 주둔지가 있었는데, 하늘의 창룡칠수*에 대응하여 금평의 용맥을 억누르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를 통칭 '청룡탑'이라 불렀으며 매일 밤 사람이 지켰다.
   청룡심수탑은 마침 화방 나루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날 밤 심수탑을 지키던 위장은 성이 조, 이름이 예였다. 강시가 된 왕보상이 다 깨진 징 같은 목청을 찢어지게 울리자마자 청룡탑 처마의 청동 방울이 일제히 요란하게 울려대며 한창 좌선하여 입정 중이던 조위장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창룡칠수(苍龙七宿) & 심수탑(心宿塔): 동양 천문학의 28개 별자리(이십팔수) 중 동방을 지키는 푸른 용(청룡/창룡)을 이루는 7개의 별자리(각, 항, 저, 방, 심, 미, 기)를 뜻함. 심수탑은 그중 다섯 번째 별자리인 '심수'를 상징하는 탑.


   조예가 두 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나루터에 도착했을 때, 성방군은 멀리서부터 눈부신 짙은 푸른색 장포를 알아보고는 앞다투어 길을 내주며 공손히 '존장'이라 칭했다.
   조예는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큰걸음으로 시체 앞까지 다가갔다. 자세히 살펴보기도 전에, 백 미터 밖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곡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시체 곁을 지키던 성방군 교위가 황급히 아뢰었다. "존장, 잡인들은 저희가 이미 쫓아냈습니다. 저건 고인의 유가족이 온 것입니다."
 

   "사수邪祟는 수단이 많으니, 시체를 확실히 조사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자들이 다가와 방해하게 두지 마라." 조예는 담담하게 분부하고는 다시 물었다. "죽은 이는 어떤 자인가?"
   교위가 대답했다. "병부시랑 왕 대인의 아들입니다."


   조예는 그 말을 듣고 약간 멈칫하더니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다.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선 한쪽에 물러나 있으라고 하게...… 잠시 후 내가 직접 왕 대인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겠네."
   교위는 대답하고 고개를 돌려 수하에게 지시를 내린 뒤, 자신은 마등을 들고 조예의 뒤를 바짝 따르며 비단에 싸인 청옥패를 건네 올렸다. "존장, 이건 죽은 자의 몸에서 떨어진 것인데 그 위에 글자가 있습니다."


   청옥패는 한 귀퉁이가 깨져 있었고 그 위에는 밑도 끝도 없이 생년월일과 사주팔자 한 줄만 남아 있었다.
   조예가 미처 자세히 보기도 전에 한 성방 관병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이리 와서 고하라." 조예가 눈꺼풀을 치켜떴다. "무슨 일이냐?"
   "보, 보고드립니다, 존장." 그 병사는 인간행주 앞으로 끌려오자 하마터면 말문이 막힐 뻔하여 횡설수설했다. "저, 저희가 고인의 가족...… 아니 시동을 찾았는데 그 녀석 말이 저희 공...… 아니 그 집 공자님이 반 시진 전까지만 해도 취류화에서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아무런 이상도 없었답니다. 취류화 그쪽은 지금도 연회가 끝나지 않았는데, 고인을 본 자가 아주 많습니다...… 방금 전에도 그저 과음을 해서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나섰다는데 이리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교위가 엄한 얼굴로 꾸짖었다. "허튼소리! 당장 그 시동을 끌고 와 엄히 심문하지 못할까. 시신이 이리 굳었는데 적게 잡아도 죽은 지 대여섯 시진은 족히 지났다!"
   병사는 흠칫 떨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조예는 말을 듣고 사람들을 시켜 왕보상의 시체를 뒤집게 한 뒤 잠시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품에서 가락지를 하나 꺼내 엄지에 끼웠다. 가락지에는 콩알만 한 수옥이 박혀 있었다. 조위장은 시체의 관원, 기해, 전중 혈을 가볍게 한 바퀴 두드린 뒤, 손가락에 강하게 힘을 주어 시체의 천돌혈*을 찌르는 동시에 가락지의 수옥을 시체의 코와 입 사이에 갖다 댔다.
   왕보상의 시체에서 '푸'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질 나쁜 석탄을 태우는 화로에서 연기가 새듯 칠규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몽땅 가락지의 수옥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쇄골의 정중앙을 눌렀을때 움푹 들어가는 곳에 위치하는 혈자리


   주변의 성방 관병들은 일제히 뒤로 움츠러들었다. 등을 들고 있던 교위마저 저도 모르게 목을 뒤로 젖히며 필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본디 얼음처럼 맑고 투명하던 수옥이 연기를 잔뜩 머금고 연탄구슬처럼 변해버렸다. 자세히 보니 그 위에는 쇠녹 같은 검붉은 빛마저 감돌고 있었다.
   "혈기가 채 흩어지지 않았다." 조예가 단언했다. "숨이 막 끊어진 참이니, 아직 신선하다."


   성방군들은 감히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눈빛만 교환했다. 이 분의 외관만 봐서는 도저히 '신선해'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만장일치로 동의하면서 말이다.


   조예가 지시했다. "이 자의 머리카락을 깎아라."
   성방 교위는 방금 아부를 너무 떤 탓에 마침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이 말을 들었다. 차마 거절할 방도가 없어 억지로 한자리 차지하고 직접 손을 대야 했다.


   시체의 머리카락을 반도 채 깎지 않았을 때, 교위가 경악하며 '헉' 소리를 내고는 바닥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시체의 정수리부터 시작해 피부와 살이 선명한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마치 두피에 연지 묻은 종이를 바짝 붙여놓은 것처럼 붉은 경계선이 이미 이마의 머리숱 선까지 닿아 금방이라도 얼굴로 흘러넘칠 기세였다.


   조예는 사주가 적힌 옥패를 손으로 가늠해 보며 안색을 미세하게 굳혔다. "'명개두*'로군. 누군가 그의 음친을 채갔다."
   *명개두(冥盖头) & 음친(阴亲): '음친'은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치르는 영혼결혼식을 의미한다. '명개두'는 억지로 영혼결혼식의 대상이 되어 죽임당한 자의 붉게 변한 기괴한 사체 형상을 뜻하는데, 그 붉은 피 자국이 마치 전통 혼례 시 신부가 쓰는 붉은 천 덮개(개두) 같다는 뜻에서 유래.


   해평은 다음 날 아침 일찍이 되어서야 이 소식을 들었다.


   전날 밤, 그는 펄럭이며 장왕부로 '날아' 들어갔다. 장왕 전하는 선천적으로 기운이 부족하여 눈이 어둡고 잘 보이지 않는 '목암불명' 병증이 있었다. 한밤중에 놀라 깨 겉옷만 걸치고 나와 보았다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눈이 멀 뻔하여 '체통도 없는 놈'이라고 세 번 연달아 꾸짖고는 하인들을 시켜 저 해씨네 거대 나방을 질질 끌고 가 씻겨 놓으라 명했다. 천지가 넓은 줄만 아는 세자 나리께서는 씻고 나와 개운해지자 아예 뻔뻔하게 장왕부에 눌러앉아 버렸다. 평소 관례대로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잘 심산이었다.
   하지만 날이 밝자마자 장왕에게 이불째 뜯겨 나와 손님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해평은 비몽사몽간에 사람들의 손에 단장되어 남서재로 쫓겨났고 그곳에서 보살처럼 생긴 인간행주를 만났다. 그 '보살'은 다짜고짜 그를 향해 청천벽력 같은 폭탄을 던졌다. 황소처럼 건장하던 왕보상이 어젯밤에 '꼴까닥' 하고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해평은 펼쳐 들고 있던 접선을 접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부채 면에 적힌 '국색천향' 네 글자가 가슴팍을 가로지른 채, 그는 한 마리의 멍청한 국색천향 나무닭이 되어버렸다.


   장왕이 곁에서 가볍게 기침 소리를 냈다.
   해평은 습관적으로 찻잔을 들어 손등으로 물 온도를 가늠해본 뒤 장왕에게 건네주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안색이 싹 변했다. "우리 후부 사람들이 시체를 발견했다고요? 그럼 우리 아버지는요? 그때 같이 계셨습니까? 죽은 시체를 직접 보셨나요?"


   후야는 젊었을 시절 '대완의 위개'라 불릴 정도로 사내 중의 서시* 같은 인물이라, 한가하고 아무 일 없을 때도 수시로 심장병을 호소하곤 했다. 그런 그가 한밤중에 장송곡을 부르는 시체와 마주쳤으니 놀라서 병이 나지 않았겠는가?
   *위개(卫玠) & 서시(西施): '위개'는 중국 서진 시대의 유명한 4대 미남자 중 하나. '서시'는 춘추시대 4대 미녀 중 하나로, 그녀가 심장병을 앓아 눈썹을 찡그리는 모습마저 절색이었다는 '서시봉심' 고사로 유명하다.


   인간행주가 대답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세자께선 안심하십시오. 후야께서는 당시 한 걸음 뒤처져 계셔서 댁의 호위들과 함께 있지 않으셨습니다."


   "아." 해평은 '국색천향' 부채질을 두어 번 하며 간 떨어질 뻔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방금 뭐라고 하셨지요? '음친 탈취'가 대체 무엇입니까?"


   "사수가 쓰는 일종의 살인 금술입니다." 인간행주는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술법을 부리는 사악한 무리가 피해자에게 죽은 자의 경첩*을 받게 만들고, 다시 피해자의 생피 한 돈과 머리카락 세 올을 취해 시체 기름, 향불의 재, 주사 등과 섞어 안료를 만듭니다. 온전하게 벗겨낸 인피 위에 '혼서'를 적는데, 이때 경첩에 적힌 것이 바로 그 원래 인피 주인의 생전 사주입니다. '혼서'에 적힌 길일길시가 곧 피해자의 죽는 날이 되며 죽기 전의 언행은 모두 혼서에 적힌 그대로 따르게 됩니다. 설령 자신의 살을 베어 삼키라 명해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지요. 음친을 빼앗긴 자는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몸부터 먼저 굳으며, 숨이 멎은 후에는 정수리부터 붉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세 시진 내에 붉은 흔적이 턱까지 번져 내려와 마치 신부의 붉은 덮개처럼 보이게 되므로, 이런 식으로 죽은 형상을 가리켜 '명개두'라고 부릅니다."
   *경첩(庚帖): 사주팔자를 적은 종이, 사주단자. 전통 혼인에서 양가가 교환하던 문서.


   해평은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잠시만요. 그게...… 존장님, 그럼 귀신이 우리 왕큰개 형님을 잡아다 사위로...… 아니 며느리로 삼았다는 겁니까? 어떤 귀신이 이토록 세상이 기절할 입맛을 가진 거죠...… 윽!"


   장왕이 탁자 밑으로 그를 걷어차 이 분별없는 소견을 끊어버렸다.


   장왕부를 방문한 인간행주는 다름 아닌 조예, 조위장 본인이었다.
 

   전날 밤, 천기각은 화방 나루터를 밤새도록 뒤졌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자 그제야 해평을 찾았다. 그가 왕보상이 살아있는 모습을 본 마지막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삼전하의 저택에 머물렀다는 말을 듣고 조위장이 친히 찾아온 것이었다.


   조예는 제법 교양이 있어 해평의 얕은 수준에 장단을 맞춰주지 않고 본론만 물었다. "세자께 여쭙고 싶습니다. 어제 화방 나루터에서 무언가 기이한 형상을 눈치채지 못하셨습니까?"
  해평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없습니다. 온 나루터를 통틀어 제가 가장 기이한 형상이었을 겁니다."


   조예가 다시 물었다. "그럼 세자께선 고인이 평소 앙심을 품게 할 만한 원한 관계가 있었는지 아십니까?"
   해평은 '허' 소리를 내며 부채를 탁 접더니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그거야 차고 넘치죠. 왕큰...... 크고 훌륭하신 우리 관원 나리의 평판은 능양하 양쪽 뭍에 가서 한번 물어보십시오. 열에 아홉은 죽으라고 저주하고 있을…..."


   입방아가 갈수록 가관이 되자, 장왕은 별수 없이 다시 한번 그를 끊어냈다. "가정교육이 엄하지 못해 버릇없이 자라는 바람에 존장께 웃음거리만 되었군요."


   영녕후 세자의 '명성'은 널리 퍼져 있어 조예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꿩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본인을 보고 나니 쓸만한 대답은 끌어낼 수 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돌려 장왕에게 말했다. "대선년에 사수가 금평에 섞여 들어와 시체를 매개로 삼아 조정 고관의 아들을 모해했으니 획책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천기각은 당연히 전력을 다해 이 사마외도들을 추적할 것이니 여러 귀인께서도 부디 옥체 보중하십시오. 아울러, 강제로 음혼* 당해 죽은 자의 몸에는 종종 시독이 남아있곤 합니다. 듣자 하니 세자께서 어젯밤 고인과 접촉하셨다 하니, 제가 드리는 이 안신벽사의 부적을 세자께서 잊지 말고 물에 타 복용하게 하십시오."
   *영혼결혼


   장왕은 손을 저어 앞으로 다가오려는 하인을 물리고 친히 부적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고화 한 폭을 가져오라 명한 뒤 조예에게 말했다. "얼마 전 기연이 닿아 이런 보물을 얻었으나, 저 같은 속인은 명화를 어찌 보관해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일찍이 천기각의 조 존장께서 이 방면의 식견이 뛰어나시다 들었으니 오늘 공교롭게 모신 김에 염치 불구하고 부탁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


   조예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전하께서 저를 아십니까?"
   장왕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어릴 적 영안 조씨 가문의 당화 선생 밑에서 그림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존장의 이야기를 한두 번 하신 게 아니지요."


   조예는 이 말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리며, 청년의 얼굴을 하고도 저도 모르게 웃어른의 자태를 내비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화는 내 셋째 아우의 자식이오."


   해평은 아침 일찍 일어난 데다 아직 밥도 먹지 못했다. 장왕이 말을 못 하게 막으니 그 천박한 입을 헛되이 놀리느니 몰래 옆 탁자를 더듬어 다과나 주워 먹고 있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하마터면 달콤한 허화수*가 목에 걸릴 뻔하여, 저도 모르게 눈앞의 푸른 옷의 존장에게 숙연한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그 당화 선생은 늙어서 정신까지 오락가락하는데 그의 친삼촌이라니, 대체 연세가 얼마나 지긋하신 건가?
   이건 수명이 길어도 너무 긴 것 아닌가!
   *허화수(荷花酥): 연꽃 모양으로 예쁘게 빚어 튀겨낸 항저우 지역의 달콤한 전통 과자.


   장왕이 아무리 금지옥엽 황족이라 한들 속인에 불과했기에 조예는 본디 그와 길게 섞을 말이 없어 공적인 일만 마치고 바로 일어설 참이었다. 그런데 '당화'라는 이름에 이끌려 속세로 돌아오게 될 줄이야. 그는 속인으로 살던 시절 어르고 달래던 어린 조카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지며 조언을 건넸다. "선사께서 곧 상경하실 것이니 혼란한 것도 이 한때일 것이오. 요 며칠간은 외출을 삼가시고 사주팔자가 적힌 경첩 같은 것은 절대 함부로 받지 마십시오. 사를 베고 마를 멸하는 일은 우리의 본분이니 전하께서 그리 예를 갖추실 필요 없습니다. 그림또한 받지 않......"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인이 나무 상자 하나를 받들어 왔다. 상자가 열리자 조예의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거절의 말이 턱 막혀버렸다.
   해평이 고개를 빼고 힐쩍 엿보니 나무 상자 안에 놓인 것은 사방 반 자 크기에 불과한 낡고 너덜너덜한 그림 조각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대체 무슨 물건이람, 염료통에 담가 절인 썩은 걸레 쪼가리인가?'


   그러나 인간행주 조위장은 이 '걸레 쪼가리'를 보자마자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어 마음속에 몰아치는 거센 풍랑을 숨겨야만 했다. 감정을 너무 억누른 탓에 그의 목소리는 잔뜩 억눌리고 긴장되어 있었다. "부산해시도浮山海市图."


   장왕이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서화의 도에 대해서는 그저 겉핥기 수준으로만 알 뿐이고, 그림 역시 고작 이 귀퉁이 하나만 얻었을 뿐이라 도저히 진위를 가려낼 안목이 없습니다. 듣자 하니 존장께 진위를 꿰뚫어 본다는 '관란*'이라는 수옥이 있다 하니 존장께서 한번 감정해 주시지요."
   *관란(觀瀾): 직역하면 '물결을 본다'는 뜻.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의 "관수유술, 필관기란(觀水有術,必觀其瀾)"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보아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사물의 표면이 아닌 본질을 꿰뚫어 본다는 뜻으로 쓰인다. 


   조예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가 말없이 손을 뻗어 그 수옥 가락지를 만지작거리더니 손가락에 끼웠다. 수옥 구슬이 그림과 한 팔 거리만큼 가까워지자마자 부드러운 하얀 빛을 내뿜으며 이 그림이 더할 나위 없는 진품이라는 사실을 안달이 난 듯 선언했다.


   "보아하니 속지 않은 모양이군요. 다행입니다. 정말 가짜였다면 오늘 존장 앞에서 단단히 망신을 당할 뻔했습니다." 장왕은 말을 마치고 하인에게 그림을 잘 포장하라 일렀다. "존장께선 부디 사양하지 마십시오. 당화 선생은 제 스승이시고 존장은 당화 선생의 웃어른이시니,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부산해시도는 전쟁의 참화로 인해 사분오열 찢어져 버렸다. 조예는 50여 년을 고심하며 수소문하고 다녔으나 지금까지 고작 조각 두 점을 얻었을 뿐이었다. 만약 다른 곳에서 이 조각을 발견했다면 그는 환희에 겨워 미쳐 날뛰며 무슨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손에 넣었을 것이다.
   장왕이 이 그림을 어떻게 구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조예가 크게 경악한 까닭은 이 고화 조각이야말로 그가 한 단계 더 나아가 성공적으로 축기를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관규'였기 때문이다. 수행 중인 모든 반선은 이렇듯 각자만의 관규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절대 극비였다.
   장왕이 어째서 이 그림을 그에게 선물한단 말인가?
   이건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병약하고 비실비실한 청년의 미소는 너무나 맑고 깨끗하여, 마치 이 고화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는 듯 보였다.
   조예는 속으로 경악과 의심이 교차하면서도 차마 그 고화 잔해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한참을 침묵하며 고민하던 그는 이윽고 미세하게 달아오른 '관란' 수옥을 손바닥 안에 단단히 감추어 쥐고는 손을 모아 읍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하시니, 전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혹 전하께서 제게 분부하실 일이 있으시다면......"
   "아." 장왕이 그의 말을 잘랐다. "어찌 감히. 그저 존장과 좋은 선연을 맺고자 했을 뿐입니다. 저희가 이 금평성 안에서 무탈하고 평안하게 머물 수 있는 것은 모두 선문의 비호와 여러 존장께서 지켜주시는 덕분이니까요."


   조예는 그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더니 그림을 거두고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장왕은 친히 문 앞까지 배웅을 나갔다.


   해평은 이 두 분이 무슨 수수께끼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지 머리를 쓰기가 귀찮았다. 조 존장이 떠나자마자 그는 뻔뻔한 강아지처럼 장왕의 등 뒤로 폴짝 뛰어붙어 장왕의 등을 두드려주려 했다.


   "저리 가." 장왕은 몸을 돌려 얼굴에 박혀 있던 것 같던 다정한 미소를 벗겨내 버리듯 정색했다. "네가 두드리는 걸 감당할 수 없다."


   해평은 얌전히 발톱을 움츠리고 장왕에게 차를 따랐다. "거두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삼형. 차 드시지요."
   장왕은 가라앉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대완국의 황실 성씨는 주였고, 삼전하 장왕의 이름은 영이었다. 그는 타고나기를 옥처럼 온화하고 윤이 났으며 거기다 병약한 기운까지 3할쯤 더해져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도 조금도 매서워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해평도 뻔뻔하게 실실 웃어대며 그를 쥐뿔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장왕이 그를 심문했다. "어젯밤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명범태세*, 그야말로 올해 운수가 사나워 지독한 액운이 낀 탓이지." 해평은 얼음물에 담가두었던 시원한 여지** 한 알을 집어 껍질을 까서 입안에 휙 던져 넣었다. "취류화의 한 아가씨가 어제 무대에 오르기 직전 악사에게 뜻밖의 사단이 났어. 걔가 부를 곡조가 내가 쓴 곡이었는데, 곤란해하는 꼴을 보자니 참...... 그 뭐야, 몸이 근질근질하길래 변장하고 화장하고 들어가 장단 맞춰준 것뿐이야. 그런데 재수없게 하필 우리 아버지를 마주칠 줄 누가 알았겠어? 우리 집 영감님도 뭐 딱히 점잖은 꼴로 간 건 아니었으면서. 관리가 불 지르는 건 괜찮고 백성이 등불 켜는 건 안 된다고, 사람을 풀어 여덟 골목이나 죽어라 쫓아오게 만들었지 뭐야. 바닥을 맨발로 뛰어다니느라 발가죽이 다 벗겨졌다고......"
   *명범태세(命犯太岁): '명범태세'는 사주팔자상 태세성군(재앙을 관장하는 별, 작품 제목인 태세도 이 태세)과 충돌하여 그해 운수에 지독한 살이 끼었음을 뜻한다.
   **리치
 

   장왕이 버럭 화를 냈다. "이게 무슨 꼴이냐!"
   "그러게 말이야." 해평은 제 허벅지를 탁 쳤다. "마주쳤으면 마주친 거지, 기왕 뻘쭘해진 마당에 그냥 부자지간에 서로 모르는 척 넘어갔으면 그만 아니야? 굳이 그렇게 동네방네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온 도성을 들쑤셔 놨으니,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야!"


  "......"
   외가 쪽 인간들은 정말 하나같이 답이 없었다. 삼전하는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그는 나무 의자의 팔걸이를 톡톡 두드려 사람을 시켜 따뜻한 물을 올리게 한 뒤, 조위장이 주고 간 종이 부적을 물에 녹여 해평을 꾹 눌러 앉히고는 억지로 마시게 했다.


  "으으으 내가 알아서 마실게...... 웩...... 이게 무슨 맛이야? 이 부적 혹시 변소 뒷간 화장지 찢어서 그린 건 아니겠지."
 

  "또 헛소리를 하면 화장지로 네 입을 틀어막을 것이야."
  해평은 급히 말린 과일 하나를 집어 먼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아 화장지가 들어갈 곳이 없게 했다.


   장왕은 그를 잠시 노려보았으나, 눈언저리가 시큰해질지언정 그 눈빛으로 저놈의 석 자 두께 철면피 낯가죽을 뚫어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단념한 듯 말했다. "방금 선사께서 머지않아 오신다는 말 못 들었어? 제발 며칠만이라도 죽은 듯 얌전히 지냈으면 해. 당분간 집에 처박혀서 글을 읽기 싫거든 차라리 잠이나 자고, 두 번 다시 그런 난잡한 구덩이에는 발도 들이지 마라."


   해평은 입에 있던 과일 씨를 툭 뱉어냈다. "대선이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너 또한 명색이 후문侯門의 적자고 나이도 찼는데 어찌 무관해?" 장왕은 안색을 가라앉히고 정색하며 그의 자를 불렀다. "사용. 너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 네 앞길에 대해서도 마땅히 마음을 써야지!"


   "후문에도 금으로 된 문턱이 있고 나무로 된 문턱이 있는 법인데, 우리 집은 용왕묘에서 떼어다 빌린 '물 문턱'이잖아." 해평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태평하게 대꾸했다. "삼형, 괜히 우리 아버지 놀리지 마. 영감님도 연세를 많이 자셨는데 체면은 좀 챙겨 드려야지."


   영녕후 가문의 문턱이 '물'이라는 사실은 딱히 비밀도 아니었다. 선제 때, 대완의 세가들이 결탁하고 외척 세력이 재앙으로 자라나 한때 조정은 그야말로 오합지졸 난장판이 된 적이 있었다. 당금 천자는 굳센 철권을 휘두르는 인물로, 즉위 후 몇 년을 칼을 갈며 은인자중하다가 하루아침에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하여 몇몇 거대 외척 가문들의 조상 묘가 화려하게 파헤쳐질 정도로 박살을 냈고, 심지어 친황후마저 폐위시킬 뻔했다.
   궁궐 내의 적지 않은 귀인들이 출신이 고귀했던 탓에 덩달아 친정의 죄에 연루되어 화를 입었는데, 묘하게도 그 틈바구니에서 해씨가 두각을 나타내고 말았다.
   해씨는 보잘것없는 한미한 집안 출신에 쥐꼬리만 한 녹봉을 받던 말단 관리였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친정에는 가문을 이을 능력조차 없는 쓸모없는 오라비 한 명만이 남아 겨우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화려한 모란과 작약 화원에 실수로 섞여 들어온 한 포기 강아지풀 같았으나 뜻밖에 군왕의 눈에 들어 성은을 입었고, 훗날 세상이 경탄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삼전하마저 출산하며 승승장구 총애를 독차지하여 황귀비의 자리에 올랐다.


   해씨 일가는 위아래 삼대 남녀노소를 통틀어 아름답지 않은 자가 없었고, 바보가 아닌 자 또한 없었다.
   하지만 바보는 비록 쓸모는 없을지언정 적어도 해악을 끼치지는 않았다. 이 가문 사람들은 사고를 치지도, 권력을 탐하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전심전력을 다해 자기 집안의 재산만 까먹는 데 집중했지 결코 나라와 백성에게 재앙을 부르지는 않았다. 게다가 다들 인물이 원체 훤칠하여 조정에 세워두면 기묘하게도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맛이 있었다. 폐하께서는 지난날 구 정적들의 속을 뒤집어 놓으려는 짓궂은 의도로 붓을 크게 휘둘러, 귀비의 오라비에게 그저 밥이나 축내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허울뿐인 직함 '영녕후'를 하사하셨다. 이들이 부디 초심을 잃지 말고 영원토록 가늘고 길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주길 바라는 성은이었다.
 

   이런 일종의 '장식용' 후문은 평범한 백성들에게나 먹힐 허세에 불과했고, 현은산의 징선첩*을 속여 넘기기엔 택도 없는 소리였다. 게다가 장왕은 아직 젊어서 태자인 큰형님을 밀어내고 자리를 꿰찬 것도 아니었다.
   집안의 자제가 특별히 발군이거나 훌륭한 명성이 바깥에 널리 퍼져 있지 않은 이상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해세자 나리의 그 '명성'으로 말하자면...... 쯧, 말할 필요도 없었다.
   *수행 자질이 있는 인재를 선발하여 보내는 초청장 혹은 징집장


   현은산의 징선첩이 금평성 길거리에 깔려 나뒹군다 한들 그의 품에 떨어질 일은 만무했다. 요 몇 년 동안 그의 모친은 아예 선문이고 나발이고 일찌감치 혼담을 올릴 생각만 벼르고 있었다.


   장왕이 말했다. "네가 못난 걸 가지고 외숙까지 끌어들이지 마라."
   해평이 '허' 하고 말했다. "개 아비 밑에 호랑이 새끼 나겠어? 이런 망나니 꼬락서니인 날 길러냈으니 후야께서 무슨 면목이 있을 리가."


   장왕은 결국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해평은 손을 깨끗이 닦고 작은 자기 접시를 끌어당겨 여지 두 알을 까, 장왕 앞에 놓아두었다.
   그는 금을 뜯는 솜씨가 뛰어나고 손가락이 유난히 섬세하고 민첩했다. 껍질을 벗긴 과일은 껍질과 과육이 조금도 들러붙지 않고 흠집 하나 없이 말끔했다. "이건 많이 먹으면 열이 올라. 삼형, 내가 딱 두 개만 까서 여기 둘 테니 달콤하게 맛만 보고 너무 많이 먹지는 마."


   이 녀석은 제멋대로 굴 때는 정말 몹쓸 놈이었지만, 착할 때는 또 한없이 착했다. 장왕의 치켜올라갔던 눈썹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이내 해평의 입에서 또 새로운 기절초풍할 망언이 터져 나왔다. "게다가 난 가고 싶지 않아. 현은산은 뭐 그리 따지는 게 많은지, 무슨 '삼수삼계'라나 뭐라나 하면서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게 사람 사는 꼴이야? 그 모양으로 불로장생하느니 차라리 한창때 요절하는 편이 낫겠어."
   말을 마친 그는 여지를 많이 먹었는지 앉은 자리에서 트림을 내뱉었다.
 

   방금 깐 여지로 향하던 장왕의 손이 황급히 움츠러들었다. 훈훈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화통이 터졌다. "헛소리, 못하는 말이 없지! 난...... 너는...... 꺼져, 꺼져, 당장 꺼지거라."
   해평은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예이."


   "잠깐, 해사용." 장왕이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최근 경성에 흉흉한 일이 많아. 사람까지 죽었으니 너도 당분간은 밖에서 빈둥거리지 마라. 알아들었어?"
   해평은 입으로는 연신 '명 받들겠습니다'라고 외쳤지만 발은 이미 남서재를 빠져나갔다. 그가 빠르게 달리기만 하면 삼형이 간곡히 퍼붓는 훈계도 그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