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est 太岁(태세) 제3장 진강 원문
https://www.jjwxc.net/onebook.php?novelid=5502413&chapterid=3

《太岁》priest ^第3章^ 最新更新:2021-02-11 11:00:00 晋江文学城

该作者现在暂无推文 支持手机扫描二维码阅读 打开晋江App扫码即可阅读 0 0

www.jjwxc.net




   해평이라는 인간은 본디 개자식인 데다 마음장포는 자라 등딱지처럼 딱딱하고 간도 쓸개도 없는 놈이라, 왕보상의 죽음 따위는 그를 조금도 동요시키지 못했다.
   그가 보기에 왕큰개의 그 품행이면 어느 날 길거리에서 맞아 죽어도 새로울 게 없었다. 이상한 건 누군가 이토록 기괴한 수단으로 그를 죽였다는 점이었다. 마치 일부러 금평성에 볼거리를 하나 더해주려는 것 같았다.
 

   인간행주 조위장과 장왕의 당부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열여덟, 아홉 난 소년 낭군은 한창 혈기 왕성하여 마음에 경외심 따위는 없었다.
 

   객실로 돌아가 해가 서쪽으로 저물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 나서야 이 올빼미가 잠에서 깼다.


   그는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휘두르듯 거창하게 기지개를 켜더니, 기어나가 제비집멥쌀죽에 수정교자 세 판을 곁들여 물배를 채웠다. 그의 사촌 형은 어린 나이에 하루 종일 늙은이처럼 구는 데다 왕부의 밥상엔 온통 멀건 국물뿐이라 영 먹은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해평은 다른 곳으로 가 먹을거리를 찾을 작정이었다.
   세자 나리는 화원에서 한창 흐드러지게 핀 장미를 꺾으며 건성건성 다니다가 장왕이 기르는 검은 대왕 고양이의 꼬리를 밟았다. 검은 고양이가 거칠게 반격했다.
   이 두 분이 맨손으로 한바탕 싸움을 벌인 끝에, 해평이 승을 거두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가슴팍에 꽃을 꽂고 위풍당당한 향기를 풍기며 왕부를 빠져나가, 또 취류화로 놀러 갔다.


   장왕 주영은 하인의 보고를 들었을 때 마침 자신의 막료인 왕검과 바둑을 두던 중이었는데,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또 도망쳤느냐?"
   그는 억울해하는 검은 고양이를 안아 들고 고양이의 머리를 가볍게 튕겼다. "너도 그래, 맨날 당하면서 그놈을 멀리 피할 줄도 모르니. 바보야?"
   고양이는 약자는 괴롭히고 강자는 두려워하여 해씨 성을 가진 자는 이기지 못하니, 주인에게 화풀이하며 앞발을 휘둘렀다. 다행히 장왕은 피하는 게 습관이 되어 손을 다치진 않았고, 그저 긴 소매의 실오라기만 고양이 발톱에 걸려 풀렸을 뿐이었다.


   어린 태감은 기겁하여 털썩 무릎을 꿇었다.
   정작 검은 고양이는 겁없이 날아가 뒷발로 주인을 걷어차더니 욕을 하며 달아나 버렸다.


   "괜찮으니 물러가라." 장왕은 손을 저으며 사람을 욕하는 것인지 고양이를 욕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했다. "내 손으로 버릇없이 기른 짐승인데, 어찌 똑같이 화를 내겠느냐."
   왕검이 웃으며 말했다. "전하께서 세자를 대하시는 게 참으로…… 친형장보다 못할 것이 없습니다."


   "형장?" 장왕이 도자기 찻잔을 들어 올렸다. "내 생각엔 내가 그놈 아비 같군."
   그는 뜨거운 물로 기침을 몇 번 억눌렀다. 찻잔에 데인 손가락 끝에 옅은 핏기가 돌아 마치 고귀하고 지친 설인 같았다.


   어린 태감이 문을 닫고 나가자 장왕은 비로소 잔을 내려놓고 왕검을 힐끗 보았다.
   왕검은 의중을 깨닫고 소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며 낮게 말했다. "이것이 저희가 현재 파악한 입선 제자 명단으로, 모두 서른 명입니다. 현은 선사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임시로 누군가를 눈여겨본다면 명단에 한두 명을 더 추가할 수도 있겠으나, 보통 크게 바뀌진 않습니다. 보아하니 엇비슷하게 올해 대선은 이대로 갈 듯합니다."


   장왕은 건네받아 쓱 훑어보더니 붓을 들어 이름 몇 개를 지워버렸다. "이 몇 사람은 선사가 금평에 도착하기 전에 덕행에 흠집이 생기거나 몸에 병이 날 것이다."
   그의 말투는 그저 기정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지극히 담담했다.


   "예." 왕검이 대답하고는 장왕이 누구를 그 자리에 밀어 넣을지 말하기를 기다렸다. 대선이 선문에서 제자를 고르는 일이라 하나, 최종적으로 누구를 뽑고 누구를 떨어뜨릴지는 사실 조정에서 바둑을 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왕은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고개를 돌려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무심하게 말했다. "태자의 처가 쪽에 바람을 좀 넣어라. 내 기억으로 큰형님께 처남이 하나 있는데 올해 딱 적령기일 터."


   왕검은 멈칫하며 참지 못하고 장왕을 쳐다보았다.
   서재에 매달린 야명주는 밝은 달처럼 환하여, 장왕의 몸에 쏟아진 빛은 마치 달빛이 눈을 비추는 것 같았다.
   서릿발 같은 냉기가 서려 있었다.


   명문 망족들은 현은산에 모두 연줄이 있어 하늘에 뜻을 닿게 할 수 있었으니, 설령 황제라 해도 맘대로 베어내거나 내칠 수 없었다. 당시 태명 황제가 외척의 화를 평정한 것도 사실 현은선문 내란의 동풍을 빌린 덕분이었다. 이 일이 지나간 후 현은 내부의 몇몇 대성들이 새롭게 판갈이를 당했는데, 태자의 외가인 장씨 가문이 바로 그 판갈이에 '씻겨나간' 쪽이었다. 그로부터 선연이 끊겨, 장씨 가문의 후손들은 두 번 다시 대선 명단에 오를 수 없었다.
   '적'과 '장'을 모두 차지한 이 황태자는 본디 어질고 효심 깊다는 명성을 지녔으나, 요 몇 년간 외가에 연루되어 줄곧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만약 처가를 현은산에 심어놓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그가 아직 한창때인 제왕의 눈 밑에서 현은대선을 향해 손을 뻗을까?


   왕검은 감히 더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공손히 대답한 뒤, 약간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 "만약 태자가 정말 참지 못하고 먼저 손을 쓴다면, 저희 쪽에서 잘 손을 써서 어쩌면 세자 나리도 들여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장왕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물어봤더니 가기 싫다더구나."
   왕검이 웃으며 말했다. "젊은이들이 철이 없어 앞날의 무게를 모르는 탓이지요. 어쩌면 세자께서 전하께 이 말을 꺼내기가 쑥스러워서......"


   장왕이 바둑알을 툭 내던지며 눈꺼풀을 치켜뜨고 왕검을 흘겨보았다.
   왕검은 흠칫 놀라 황급히 드러냈던 앞니를 고스란히 입안으로 거두었다.


   "손이 미끄러진 것이니 자겸은 긴장할 것 없다. 그 망나니 놈이 내게 뭘 얻어낼 때 체면치레를 한 적이 있던가? 가기 싫다니 가기 싫은 게지. 게다가 현문이 뭐 그리 깨끗한 곳도 아니고, 나 역시 그놈더러 내 앞길을 대신 닦아놓으라고 기대할 만큼 못나진 않았다."


   왕검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학생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피곤하구나." 장왕이 말했다. "바둑판은 거두지 마라. 다음에 이어 두자꾸나. 이만 가보거라."


   왕검은 눈으로 코를 보고 코로 입을 보며 조심스레 뒷걸음질로 문을 나섰다. 이마에 땀이 살짝 맺혔다. 뜰에 나와 고개를 드니 은하수는 어둑하고 밤의 기운이 사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조정에는 암류가 소용돌이치고, 하늘 위도 속세도 편할 날이 없구나.


   해평조차 문을 나서자마자 금평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능양하는 금평성을 세로로 관통하여 구역을 둘로 나누었다. 서쪽은 아홉 개의 문을 가진 황성이 광운궁을 에워싸고 있어 고관대작들이 모여 살았고, 동쪽은 상인과 잡역부들이 몰려 사는 곳이었다. 귀천 사이에 강 하나를 두고, 강 위에서는 늘 풍류와 노랫가락이 넘쳐나며 화려한 놀잇배와 유람선이 가득 떠다녔다.
   그러나 이날 늦은 오후, 평소 같으면 동틀 때까지 시끌벅적했을 능양하 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증기선들도 모두 기슭에 가만히 정박해 있었다.
   놀잇배가 뿜어내던 구름과 안개가 사라지자 강 위의 시야가 단번에 탁 트여 동쪽 기슭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오가는 성방 관병들이 평소보다 확연히 빽빽해졌고, 푼돈을 아끼려 노숙하던 타향의 막일꾼들은 행여나 성가신 일에 휘말릴까 봐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취류화마저 적막했다.


   바로 어제가 감화회였건만, 지금 해평이 1층 대청을 한 바퀴 둘러보니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는 온통 왕보상뿐이었다. 마치 왕큰개가 새로운 화괴라도 된 것 같았다.
   어떤 자칭 소식통은 침을 튀겨가며 왕보상의 죽음을 묘사해댔다. 뭐 '송곳니가 돋았다'느니, '얼굴에 붉은 털이 났다'느니…… 마치 제 눈으로 똑똑히 본 것처럼 흥분해서 춤추듯 손짓 발짓을 하다가, 부주의하게 해 도련님 손에 들린 술 반 잔을 쏟게 만들었다.
 

   까닭 없이 피해를 입은 해평이 막 성질을 부리려던 찰나, 계단 쪽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화괴 낭자다!"
   "봐봐, 장리야! 장리가 나왔어!"


   장리는 긴 머리를 느슨하게 틀어 올린 채 뭇 별이 달을 에워싸듯 호위를 받으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나른하게 대청을 쓱 훑어본 그녀는 오늘이 어제와 달리 자신을 개시해 줄 귀인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즉각 안색을 차갑게 식혔다. 장리는 본디 귀객만 받을 뿐, 돈 없는 자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기방 문 열고 장사하는 마당에 다들 돈 있는 자들과만 논다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처럼 대놓고 얼굴에 '나는 속물이다'라고 써 붙이고 다니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 말해, 얻지 못하는 것이 가장 고귀해 보이는 법이라 정말 적지 않은 이들이 그녀의 그런 태도에 안달을 냈다.


   해평은 멀찍이서 바라보며 흥미로워했다. 장리는 평소 수수한 옷을 즐겨 입었는데, 동백화관을 쓴 오늘은 특이하게도 새빨간 치마를 골라 입었고 입술의 연지도 짙어 기세가 등등한 것이, 마치 봄바람을 업신여기는 핏빛 진달래 같았다. 평소 할 일 없이 미모를 다투던 다른 크고 작은 꽃들은 짠 것처럼 하나같이 집에 초상이라도 난 듯 입고 나와, 그녀의 압도적인 독무대를 돋보이게 받쳐주고 있었다.


   해평을 보고 나서야 장리의 차가운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번졌다. "오늘은 안 오나 했더니. 소매에 튄 건 뭐야?"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다가와 해평을 끌고 갔다. "네가 어젯밤에 벗어둔 옷은 내가 빨아서 향을 씌워뒀어. 남의 손은 거치지 않았으니, 가서 갈아입어."


   취류화에 던져둔 옷 따위 해평은 본래 버릴 생각이었지만, 주변에서 시기 질투가 진동하는 시선들이 제 몸에 꽂히는 것을 느끼자 저도 모르게 오기가 발동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국색천향' 부챗살을 펼치고는 흔쾌히 화괴를 따라 그녀의 규방으로 향했다.


   "동백화관을 쓰니 다르네. 아가씨, 금상천화시군요." 해평은 장리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멀 뻔했다. 전날 단골들이 던진 비녀와 팔찌, 옥패들이 궤짝 모서리에 치우지도 않은 채 수북이 쌓여 있었고, 구석의 낡은 병풍도 바뀌어 있었다. 꽂밭 사이의 공작새를 수놓은 솜씨가 제법 정교했다. 병풍 위에는 진주와 비취가 주렁주렁 달린 공작 청색 망토가 영 아끼지 않는 태도로 걸쳐져 있었는데, 대체 어느 호구가 사적으로 보낸 건지 알 수 없었다.


   장리는 바깥채에서 찻잔을 씻고 차를 우리며 눈을 흘겼다. "너도 나를 놀리러 왔니?"
   해평은 그녀가 또 비비 꼬인 투로 나오자 의아하게 되물었다. "억울하오, 미인. 대체 무슨 소리야?"


   장리의 말투에는 영안 억양이 묻어났다. 영안은 금평에서 백오십 리 떨어져 있었으나 억양은 크게 달랐다. 그곳 사람들은 말끝을 살짝 길고 나긋나긋하게 끌었는데, 여인이 말할 때 유독 듣기 좋았다. 듣자 하니 영안에는 세 가지 절경이 있다고 했다. '안개 낀 아치형 다리, 목련 파는 아리따운 아가씨, 연꽃 핀 깊은 곳의 통통한 마름열매.' 그중 '목련 파는 아리따운 아가씨'란 꽃 파는 처녀가 거리를 누비며 외치는 소리와 자태가 모두 사람을 홀려 현지의 이름난 볼거리라는 뜻이었다.


   장리의 목소리는 더없이 듣기 좋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영 곱지가 않았다. "다들 그러더라, 어젯밤 '여감공'이 친히 금을 타주었으니 당나귀 한 마리 끌고 올라가 두어 번 울게 했어도 장원을 차지했을 거라고."


   '여감공'은 해평이 가희와 악공들 사이에 섞여 소곡을 쓸 때 쓰는 예명이었다. 처음엔 그가 미인들에게 돈을 쥐여주며 제 곡을 불러달라 부탁했으나, 훗날 그 곡조들이 흔한 곡패들과 달라 신선하게 들렸는지 어쩌다 보니 큰 인기를 끌게 되어 반대로 미인들이 앞다투어 그의 곡을 구걸하게 되었다.
   이 철없는 망나니는 장리의 말을 듣고는 아가씨의 기분이 상하든 말든 속없이 기뻐하며 넙죽 한마디 거들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장리가 화가 나서 붉어진 얼굴로 쾅 하고 찻주전자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해사용!"


   "에헤이." 해평은 옷을 갈아입고 병풍 뒤에서 나오며 신이 나서 겉옷을 정리하다가 건성으로 달랬다. "화내지 마. 대체 누가 그런 소릴 했어? 나중에 말해줘. 앞으론 그 입 가벼운 것들이 곡 달라고 조르면 당나귀 울음소리 세 번 내기 전엔 안 줄 테니까…… 응, 이건 뭐야?"


   그는 새로 갈아입은 옷 안주머니에서 정교하게 수놓은 비단 주머니 하나를 발견하고는 바로 열어보려 했다.
   "아직 열어보지 마." 장리가 그를 불러 세웠다. "돌아가서 봐."


   "무슨 물건인데?"
   "너한테 주는 사례품." 장리는 얼굴을 굳힌 채 그의 앞에 찻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여감 선생이 다음엔 나더러 당나귀 울음소리를 내라고 할까 봐 무서워서."


   "됐네." 해평은 주머니를 다시 품에 넣고 찻잔을 들어 한 모금 홀짝이더니 미간을 찌푸리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차를 너무 진하게 우려 희미하게 이상한 맛이 났다.
   "나한테는 아주 별걸 다 따지면서, 평소에 주변 사람 좀 챙기지 그랬어. 그랬으면 무대 오르기 직전에 악사한테 사단이 났는데 귀띔해 주는 인간 하나 없는 일은 안 겪었을 거 아냐."


   "그럴 가치 없어." 장리는 거만한 고양이처럼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나란 사람은 팔자도 사납고 운도 꼬였으니 그냥 남들하고 멀리 떨어져 지내는 편이 나아. 괜히 남한테 불운 옮기지 않게."


   "헛소리." 세자 나리는 그 말에 격하게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반박했다. "팔자가 사나운데 나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겠어?"
   "......"


   너무나도 당당한 탓에, 이 세자 나리는 종종 사람들에게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그의 경박함과 오만하고 잘난체하는 것이 모두 그럴싸한 도리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었다.
   장리는 자신도 참 구제 불능이라 여겼다. 그토록 많은 이들이 떠받들고 비위를 맞춰줘도 그저 짜증만 날 뿐인데, 유독 자신보다 훨씬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이 도련님만이 그녀의 오매불망 상념이 되었으니...... 이 '상념'은 마음이란 게 없어서 연지와 분냄새 속에서 만인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면서도 단 한 번도 그녀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다.


   장리는 그의 뻔뻔한 대꾸에 말문이 막혀 한참 뒤에야 한숨을 쉬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어젯밤 화방 나루터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하필 막 취류화에서 나간 사람이었대……. 너 오늘 감히 발걸음하는 사람이 확 준 거 못 봤어? 내가 동백화관을 쓰자마자 이런 재수 없는 일이 터지다니, 분수에 안 맞는 걸 탐내는 것을 하늘도 꼴 보기 싫으셨던 모양이지."


   해평이 입에 발린 소리를 툭 던졌다. "웃기는 소리, 세상에 우리 화괴장원이 안 어울리는 게 어딨……"
   장리의 눈빛이 일렁였다. "너 말이야."
 

   해평은 안색 하나 안 변하고 뒷말을 이었다. "……그건 확실히 그렇지."


   장리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개차반인 남자가 있을 리 없다고,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해평은 숨길 생각 없이 겉과 속이 똑같은 망나니답게, 아주 떳떳하게 시선을 마주했다.
   얇은 피부에 가는 골격, 턱선이 예리하면서도 이목구비는 짙고 강렬하여 사람을 압도할 만큼 눈이 부셔 묘한 흉포함마저 풍기는, 타고나길 박정하고 매정한 사내의 얼굴이었다.


   장리는 한순간 말문이 막혀 그저 손가락을 들어 문가를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당장 꺼지라는 시늉만 했다.
   해평은 그녀가 달거리*가 가까워져서 세 마디 중 두 마디는 생떼를 쓴다고 생각하여 달래줄 마음도 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접선을 허리춤에 꽂으며 그가 말했다. "너도 마음 좀 편히 먹어. 뭐 그리 생각이 많아. 그리고 그 찻주전자 좀 갖다 버려야겠어. 진하게 우려도 쇳물 냄새가 다 안 가려지잖아. 배탈 날라, 얼른 도월금으로 만든 걸로 하나 장만해. 난 간다."
   *월경


   "세자 나리." 그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등 뒤에서 장리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한텐 그 흔한 빈말조차 해주기 싫은 거야?"
   해평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녀를 돌아보았다.


   장리는 몸의 절반을 어스름한 증기등 그늘에 담근 채, 설명하기 힘든 어둡고 쓸쓸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다른 남자들처럼 나를 달래줘. 경화수월*일지언정 기쁨에 잠길 수 있게. 그럼 앞으론 다른 사람은 찾지 않고 너 한 사람만을 위해 단장할 테니까. 별로야?"
   *경화수월(鏡花水月): 거울에 비친 꽃과 물에 비친 달. 아름답지만 실체가 없는 것, 허상을 비유하는 말.


   "아하, 참 나!" 해평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빙빙 돌려 말하더니, 결국 돈을 써서 널 빼달라는 거였구나, 그렇지?"
   "......"
 

   "진작 말하지! 그깟 일 쯤이야 못해줄 거 없지. 근데 내가 평소에 씀씀이가 헤퍼서 수중에 돈이 딱히 없는 건 너도 알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 한두 달만 기다려 봐. 용돈 좀 모아볼게." 그러더니 그는 툴툴거리며 덧붙였다. "너도 진짜 대단하다. 자유를 얻고 싶으면서 동백화관은 왜 탐냈어? 화괴의 몸값은 배로 오르는 거 몰라?"
   장리는 부아가 치밀어 있는 힘을 다해 이를 악물고 말을 끊었다. "내 몸값은 내가 낼 테니, 세자 나리 지갑 여실 필요 없어!"
 

   해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대체 뭘 바라고?"
   "내 맘이야! 내가 그동안 모은 재산……"


   "어지간히 해라. 네 그 작은 쌈짓돈이 무슨 '재산'이라고." 해평이 손을 휘저으며 나름 그녀의 입장을 생각해 타일렀다. "내가 너라면 잘 나갈 때 바짝 몇 년 벌어서 나중에 몸 건사하고 노년에 호강할 밑천으로 삼을 거야. 맨날 할 일 없이 혼자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한가하시네."


   "네가 나를 다정하게 속여만 준다면 간과 창자를 다 꺼내 바칠 텐데 목숨인들, 재산인들 아까울까!"


   말이 이 지경에 이르자, 해평도 마침내 얼굴을 굳혔다.
   그는 이런 바닥에서 닳고 닳은 터라, 음정 하나만 들어도 다음 곡조가 뭔지 훤했다. 장리의 뜻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풍월장의 인연이란 수증기보다 얄팍하여 돈을 받고 웃음을 팔고 돈을 내서 즐거움을 사면 문을 나설 때 셈이 끝나는 법이었다. 영녕후부의 문턱이 아무리 낮아도 그가 화류계 여인과 혼인하게 두진 않을 터였고, 그들 집안은 첩을 들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으니 그녀를 곁에 둔들 어느 자리에 앉힐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의 곁을 맴도는 미인은 차고 넘쳐 온갖 다채로운 절색들을 이미 질리도록 보았다. 장리가 목소리가 특출나 그의 곡조를 몇 곡 더 얻어냈을 뿐, 대단히 각별한 사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굳이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을 필요가 없어 참을성 있게 멍청한 척, 능청을 떨며 장단을 맞춰준 것인데.
   그런데 이 아가씨가 오늘 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약을 잘못 먹은 것처럼 끝도 없이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닌가!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려 들다니." 해평은 웃음기를 싹 지웠다. "너한테 좋을 게 뭐가 있어?"
   장리가 쓸쓸하게 반문했다. "그럼 너한테 나쁠 건 또 뭔데?"


   "나쁠 건 없지만, 좋을 것도 없잖아. 내가 네 간이랑 창자를 받아서 뭘 하겠어?" 해평이 두 손을 펼쳤다. "나도 뱃속에 멀쩡히 다 달려 있는데 남의 걸 왜 받아? 그야말로 손해만 끼치고 득이 없는......" 
   그는 제 딴엔 좋은 마음으로 진심 어린 충고를 한답시고 지껄인 거였지만, 결국 말을 끝맺기도 전에 장리에게 등 떠밀려 쫓겨나고 말았다.


   해평은 흥이 깨져서 아예 취류화에서 나와버렸다.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장리의 방에서 드문드문 노랫소리가 흘러내려왔다. 해평이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귀를 기울여보니 그녀가 괴상한 남방의 단조를 부르고 있었다. 사랑을 구하지 못한 백란지*의 무녀가 정인을 산 채로 인형으로 꿰매며 토해내는 한 서린 핏빛 자백이었다.
   남방은 야만적인 벽지라 소곡들조차 흔히 귀기가 감돌고 음산했다. 장리가 금 타는 소리를 한껏 낮췄으나, 세 푼쯤 되던 귀기가 그녀의 노랫가락을 타자 일고여덟 푼으로 증폭되어 듣는 이의 온몸을 찜찜하게 만들었다.
   *온갖 어지러운 땅이라는 뜻인데 작중에서는 남방의 지역명으로도 쓰입니다.
 

   해평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고심해서 조언을 해줬건만 다 소귀에 경 읽기였군.'
   그리고는 고개를 치켜들고 장리의 창문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진짜 배불러서 견딜 수가 없지?"
   기이한 금과 노랫소리가 뚝 끊기더니 잠시 후 창문 밖으로 화분 하나가 날아와 세자 나리를 후려치려 하자 그는 달아났다.


   "그가 갔습니다."
   화분을 던진 건 장리가 아니었다. 삐쩍 마르고 왜소한 노인이었는데, 등이 거의 낚싯바늘처럼 굽어 있었다. 화괴의 규방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마치 그림자 속에서 피어오른 요괴 같았다.


   장리는 현을 누른 채 넋이 나간 듯 "네" 하고 대답했다.


   "아가씨." 곱사등이의 목소리는 눅눅하게 젖어 끊어질 듯한 금현 같았다. "그자는 우리와 길을 함께할 자가 아니니 미련을 두실 필요 없습니다."
   "알아요." 장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미련 같은 거 안 둬요. 보셨잖아요. 저에게 대충 장단 맞춰주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인간인데 그깟 얄팍한 정조차 있겠습니까? 다만……"


   "다만?"
   장리가 머뭇거렸다. "다만 생각해 보니, 성정은 고약해도 저를 하대한 적은 없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그를 해치려니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해요."


   "군자는 짐승이 죽어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푸줏간을 멀리한다지만, 정작 고기를 끊고 채식만 하는 놈은 본 적이 없지요.*" 곱사등이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능양하 서쪽에는 인간다운 인간이 없습니다. 아가씨, 아가씨 부모님의 억울한 일가족을 생각하십시오. 아가씨가 겪은 그 끔찍한 고통들을 떠올리시란 말입니다!"
   *원문은 "君子不忍見禽獸死,是以遠庖廚". 《맹자》 〈양혜왕 상〉의 "군자원포주(君子遠庖廚)"에서 유래.


   장리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침묵했다.
   곱사등이 노인이 목소리를 억눌렀다. "큰 불이 걷히지 않으니, 매미 소리 끝이 없구나大火不走,蝉声无尽."
   한참이 지나서야 장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서리 맞아 죽을지언정 뜻을 저버리지 않으리宁死霜头不违心…… 사숙四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