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은 미소를 머금고 예비 제자들이 차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황자, 구공주, 자계군왕의 세자…… 그리고 몇몇 종실 자제들까지. 총 서른한 명의 예비 제자 중 주씨 성을 가진 황족이 여섯 자리를 차지했다. 현은산의 대성* 중에서는 오직 임씨 가문만이 적장자를 올렸고, 조씨 가문은 팔 촌도 닿지 않는 먼 방계 출신 하나가 들어왔을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꽤 뜻밖의 인물들이었다.
   이번 기수 세가 자제들의 도덕성이 유독 불량한 탓에 명단에 오르자마자 모조리 잘려 나간 것일까, 아니면 지 사숙께서 일부러 그리하신 것일까?
   그건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성(大姓): 명문가 성씨


   남의 한 명이 그의 귓가에 조심스레 물었다. "도통께서 보시기엔 저들 중 누가 내문으로 들어갈 재목 같습니까?"
   "물어볼 사람한테 물어라. 나 같은 촌놈이 내문 문짝이 어느 쪽으로 나 있는 지나 알겠느냐." 방전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어차피 주씨 아니면 임씨겠지."
   그 남의가 말했다. "그럼 남은 자들은 훗날 모두 우리의 동료가 되겠군요."
   "꿈 깨라." 방전이 나른한 걸음으로 차의 뒤를 따랐다. "잠수사는 하수도 뚫는 '길상여의저' 같은 곳이 아니다. 그곳에 들어간다고 영규가 저절로 탁 뚫리는 줄 아느냐. 매년 살만 십여 근 쪄서 돌아오고 영적인 수확은 하나도 없는 놈들이 수두룩하다."


   행렬 맨 끝에 서 있던 해평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이 녀석의 귀는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수 장이나 떨어진 곳에서 속삭이는 소리도 기가 막히게 주워들었다. 평소 남의 담장 너머를 엿듣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해평은 다른 자질구레한 정보는 전부 걸러내고 오직 '잠수사의 밥맛이 꽤 좋다'라는 사실만 골라 듣고는 무척 흡족해하며 넉살 좋게 방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방전의 얼굴에 일순간 형언하기 힘든 표정이 스쳤다. 그가 참지 못하고 동료에게 물었다. "내가 그리 사람 좋은 인상이냐?"
   수하는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순발력 있게 아부를 떨었다. "당연하지요. 도통께서는 언제나 온화하고 친절하십니다."
   방전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이따 의당에 가서 안질 고치는 약이나 몇 알 타 먹어라."


   그때, 조예가 다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조씨 가문의 적장자가 지 장군의 붓끝에서 가장 먼저 명단에서 지워지는 수모를 당한 탓에 조예까지 덩달아 기가 죽어 평소보다 한 층 더 조용히 지내는 중이었다. 그는 남들과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방전 앞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도통, 간수하는 자들이 직무를 태만히 한 탓에 방금 보고가 올라오기를, 그 명령반우가 도망쳤다고 합니다……"
   "도망치면 도망친 거지 뭐." 방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직 영지도 트이지 않은 조그만 반우 녀석의 위험성은 길고양이만도 못했고, 겉보기에도 그리 값나가는 물건이 아니었기에 재산상의 손실이라 칠 수도 없었다.


   "그게……" 조예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아무래도 지 사숙께서 지명하여 거두신 물건이 아닙니까."


   "사숙께서 녀석을 어디다 쓰시겠느냐. 애초에 그 어린것이 산 채로 굶어 죽는 꼴을 차마 보지 못해 챙기셨을 뿐이지, 자네는……" 방전은 대선의 그 복잡하고 온갖 번잡한 허례허식들을 치르느라 며칠 내내 시달린 탓에 몹시 피로했고, 하마터면 속마음을 여과 없이 내뱉을 뻔했다.
   '자네는 이딴 하찮은 일로 윗사람의 속내를 넘겨짚으려 들 시간에 너희 집안 자제들 단속이나 똑바로 해라.'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이 말을 간신히 참아 넘겼다.


   "자네는…… 신경 쓸 것 없다. 영석으로 연명하는 반우가 속세에서 함부로 날뛰지는 못할 터. 어쩌면 이 철없는 도련님 아가씨들 중 누군가의 짐 속에 좋은 물건이 들어 있어, 거기에 홀려 따라갔는지도 모르지." 방전은 어색하게 말을 돌려 수습하고는 시치미 떼고 조예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핏덩이들 '학당' 가는 길이나 바래다주고 올 테니 이틀간 금평은 형제들이 수고 좀 해주게."


   말을 마친 그는 입술을 오므려 휘파람을 불었고, 그의 발밑으로 장검 한 자루가 떠올랐다.
   방전이 어검하여 솟아오르자 차를 끌던 모든 백마가 일제히 길게 울음소리를 내며 앞발을 치켜들었고 텅 빈 정양 대거리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해평이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보니 텅 빈 거리 양옆과 후미진 골목 어귀마다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적지 않은 백성들이 어검하는 남의 반선을 보고 마치 하늘에서 신이 강림한 듯 몹시 감격하여 길가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방 도통은 이런 광경에 익숙한 듯했다. 펄럭이는 도포 소매를 휘날리며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아무리 진흙탕을 굴러도 벽에 바를 수 없는* 한심한 도련님의 가슴속에도 그 찰나 부러움이 일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생각했다. '일 년 뒤면, 나도 저 푸른 도포를 걸치고 저토록 위풍당당하게 날아다닐 수 있을까?'
   *'烂泥扶不上墙'. 진흙은 아무리 발라도 벽에 붙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도와줘도 발전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관용구.


   어느덧 행렬이 합음루를 지났다. 합음루는 황실 상인이 운영하는 금평성에서 가장 높은 주루로, 동정문 입구에 자리하여 배웅을 나온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누각의 아담한 별실 창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그 너머로 낯익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장왕 같았다.


   그러나 해평이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마차 행렬이 돌연 속도를 높이더니 질풍처럼 동정문을 빠져나갔다.
   해평은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등받이에 거칠게 부딪혔다. 무시무시한 돌풍이 창문 틈으로 밀려들더니 창틀의 명문이 빛을 발하며 창문이 저절로 굳게 봉쇄되었다. 귓가가 웅웅거리면서 온몸이 좌석에 짓눌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짓누르던 압박감이 조금 가벼워진 틈을 타 해평이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창밖에서 방 도통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꽉 잡고 잘 앉았느냐. 가급적 창문을 열고 밑을 내려다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게다."


   이 말은 정말이지 효과 만점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의 모든 마차의 창문이 일제히 열리며 수많은 머리통이 쏙쏙 튀어나왔다.


   해평은 성 밖의 매연과 흙먼지가 뒤섞인 사나운 바람에 숨이 막혀 눈을 가늘게 뜬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금평의 대지가 까마득히 멀어져 있었고, 가옥과 도로, 드높은 누각과 굽이치는 강물이 끊임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와 가장 가까이 있던 소년 하나가 그 자리에서 눈을 희번덕 뒤집더니 차창 안으로 뻣뻣하게 쓰러져 기절해 버렸다.


   방전은 유유자적하게 검을 타고 거침없이 날아 오더니 기절한 형제의 창문을 손수 닫아주었다. "쯧, 높은 게 무서우면서 왜 말을 안 듣나."


   거센 바람에 일그러진 해평의 머리통이 눈에 들어오자 방 도통은 돌연 시선을 날카롭게 번뜩였다. 무언가를 감지한 듯 그가 중얼거렸다. "거기로 갔군."


   "아? 뭐라고요?" 해평은 귓가에 몰아치는 광풍 탓에 '허공을 밟고 날아다니는' 낭만이 이토록 처참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존장, 그러다 찬바람에 얼굴이 무 껍질처럼 트지 않겠어요!"


   방전이 대답하기도 전에 해평은 무언가 발끝을 건드리는 감각을 느꼈다. 고개를 숙여보니 좌석 밑으로 도화색 옷자락 한 귀퉁이가 삐져나와 있었다.
   대낮에 귀신이 나타났다!


   무방비 상태였던 해평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이익!"


   도화색 옷자락의 주인은 황급히 안으로 몸을 움츠리려 했으나 해평이 옷자락을 밟고는 곧장 손을 뻗어 그 '귀신'을 끄집어냈다.
   '와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남옥 영석이 담긴 상자 하나가 차 안으로 와르르 쏟아졌고, 좌석 밑에서 꼬마 아이 하나가 끌려 나왔다.


   아이는 양쪽 작은 손에 남옥 구슬을 하나씩 움켜쥐고 있었고 입도 부자연스럽게 꾹 다물고 있었다.


   "……"
   실수로 짐을 잘못 가져와 남의 집 아이를 데려온 건가? 그런데 이 꼬마 왠지 낯이 익은데?


   그때, 창밖에서 날카로운 지풍* 한 줄기가 날아와 아이의 가슴팍을 짚었다. 그러자 아이는 '우욱' 하고 구역질을 하더니 입안에 머금고 있던 남옥 두 알을 뱉어냈다. 동시에 쇠못을 박아놓은 듯한 날카로운 이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너!" 그 소름 끼치는 '못 판' 같은 이빨을 보자 해평은 단박에 기억해 냈다. 이 꼬맹이는 다름 아닌 안락향에서 그 사람 가죽을 벗기는 사수가 데리고 다니던 '꼬마 종'이었다!
   *지풍(指风): 손가락에서 뿜어내는 기운
 

   "허, 역시 부잣집 도련님은 다르군." 방전이 어느새 차 벽을 뚫고 들어와 있었다. 조약돌처럼 바닥에 굴러다니는 남옥 구슬들을 곁눈질하며 미세하게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
   명령반우는 그를 보자마자 겁에 질려 감히 발버둥조차 치지 못했다.


   방전이 손을 휘젓자 흩어졌던 영석들이 저절로 나무 상자 안으로 굴러 들어가 가지런히 쌓였다. 그기 상자를 집어 들어 무게를 대강 가늠해 보니 족히 백여 냥은 되었다. 상자 안의 영석 구슬들은 하나같이 영롱하고 알이 굵었으며, 잡된 녹빛 하나 섞이지 않은 상등품 남옥들이었다.
   이 상자 하나면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집안 살림이 넉넉한 모양이구나." 방전이 눈꺼풀을 들어 해평을 찬찬히 훑어보며 미소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영녕후야의 봉록이 이토록 두둑했던가?"


   "말도 마십시오. 우리 후야의 그 쥐꼬리 봉록으로는 조상님이 남교에 남겨주신 땅의 수입만도 못합니다." 해평은 방전의 가시 돋친 비아냥을 못 알아들은 것처럼 무시무시한 바람이 들이치는 창문을 태연히 닫으며 넉살을 부렸다. "아, 존장 여기 앉으시죠. 다과 좀 드시겠습니까? 집에서 싸 온 건데 아직 따뜻합니다."


   방전의 굳었던 안색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는 해평의 호의를 사양하며 물었다. "오,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는 모양이지."


   사실 남교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은 지 오래였다. 도월금이 세상에 내려온 이래 온갖 증기 기관차와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고, 특히 운하와 부두를 낀 남교는 그야말로 노른자위 땅이었다. 그곳에 땅이 있다면 그저 지대만 받아먹어도 떼돈을 긁어모을 테니 넉넉한 것이 당연했다.


   방전이 영석 상자를 닫아 한쪽에 밀어 두었다. "집에 땅이 얼마나 있기에 이리 물 쓰듯 돈을 쓰나?"
   해평은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대답했다. "이삼백 묘쯤? 정확히는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땅에서 나오는 소작료라야 푼돈이고, 우리 후야는 주로 얼굴로 먹고 삽니다."


   "오?"
   해평이 물었다. "존장, 혹시 '최기崔记'라고 들어 보셨어요?"


   방전도 그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최기'는 강남 지역 최대의 보석상으로, 금평성 한복판 가장 번화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고즈넉하고 웅장한 대저택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명문가 마님들이나 귀족 아가씨들이 외출할 때 최기의 장신구 하나쯤 걸치지 않으면 감히 남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부끄러워할 정도였다.
   가게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다 보니 물건을 살 형편이 안 되는 평민들조차 그 이름을 알았다. 갓난아이들도 합음루의 장원홍*을 알고, 절에 든 중도 서봉각의 계화오리**를 알 듯, 방 도통 같은 사내대장부조차 금평 귀부인들의 지갑을 모조리 털어가는 최기의 상징인 그 작은 비단잉어 문양만큼은 알아볼 정도였다.
   *장원홍(狀元紅): 전통 소흥주(紹興酒)의 일종으로 유명한 고급 술.
   *계화오리(桂花鸭): 정식명칭은 염수압(盐水鸭)으로, 난징의 대표 요리. 오리를 염수에 담가 삶은 요리다. 난징의 옛 지명인 금릉을 따서 금릉염수압이라고도 하며 중추 전후 계화가 만개하는 시기에 오리가 가장 통통하게 살이 오르기 때문에 계화오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해평이 다과 상자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우리 어머니 성이 최씨입니다. 최기는 바로 외조부 댁 장사이고, 어머니께서 그 지분의 삼 할을 쥐고 계시지요."


   이 일의 사연은 길었다. 최부인이 아직 처녀이던 시절, 또래 아가씨들과 교외 나들이를 나갔다가 마차가 고장 나는 일이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후야가 호의를 베풀어 도와주었는데, 꽃에 환장하는 성격의 최씨 집안 대소저는 후야의 눈부신 미색에 그만 혼을 뺏기고 말았다.
   당시 후야는 아직 작위를 받기 전, 그저 매일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공자에 불과했다. 최 대당주의 눈에 해씨 가문 녀석은 빈대나 다름없었지만 세속의 잣대로 보면 깨알만 한 관직도 엄연한 관료 집안이니 상인 문벌보다는 격이 높았고, 해씨 집안의 독자를 데릴사위로 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좋은 혼처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막무가내였다. 그가 아니면 시집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그 누구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노발대발한 최 대당주는 정 그 얼굴 반반한 놈과 혼인하고 싶거든 더 이상 제 아비로 여길 생각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아가씨는 부모의 뜻을 깎듯이 받들어 최씨 가문과 의절을 선언하고는 실오라기 하나 챙기지 않은 채 뒤도 안 돌아보고 시집을 가버렸다.
   하지만 사람 앞일은 모르는 법. 훗날 해씨 가문의 큰딸이 궁에 들어가 귀비 자리에 올랐고, 요리조리 줄을 잘 선 그 미덥지 못하던 기생오라비는 황실의 치맛바람을 등에 업고 덜컥 영녕후 자리에 올랐으며, '눈이 삐었다'던 최 아가씨는 당당히 후부의 안주인이 된 것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후문의 인척을 어찌 내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대당주와 최 부인의 부녀의 정은 물 흐르듯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졌다.
   대당주는 막강한 권력을 든든한 뒷배로 삼게 되었고, 영녕후부는 물론 궁에 계신 귀비 마마의 살림까지 풍족해졌으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해평은 후야의 이 빛나는 입신양명기를 대강 들려준 뒤 자신의 촌평을 덧붙였다. "사실 제가 보기엔 우리 어머니와 고모가 백년가약을 맺은 것에 가깝고, 아버지는 그 사이에 끼워 넣은 덤이에요."


   "……"
   무어라 논평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으나 아무튼 조금 부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해평은 송화단자*를 입에 쏙 밀어 넣고 턱을 삐딱하게 든 채 방전을 비스듬히 쳐다보며 반쯤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 "존장, 대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 같이 근본도 뿌리도 없는 집안은 오로지 황제 폐하의 성은에만 목을 매야 하는 처지입니다. 어사대의 팔백 쌍의 눈이 열두 시진 내내 우릴 주시하고 있으니 조금만 잘못해도 꼬투리 잡히기 십상이지요. 건드려선 안 될 것이라면 땅에 동전 한 닢이 굴러다녀도 감히 줍지 못해요. 간신 노릇이 그리 쉬운 줄 아세요?"
   *송화단자(松花團子):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둥글게 빚어 삶거나 찐 뒤, 겉에 꿀을 바르고 노란 송화가루(소나무 꽃가루)를 묻혀 만든 전통 떡(경단). 송화가루는 봄철에만 얻을 수 있고 채취 과정이 까다로워 예로부터 귀한 고급 식재료였다.


   방전은 녀석의 맹랑한 도발에 잠시 멈칫했다.
   사람들은 '인간행주'를 마치 살아있는 신처럼 대했고, 왕공귀족들조차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더구나 방전은 천기각 내에서도 지독히 까다로운 성정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천기각의 실권을 잡은 이후로 그 누구도 그에게 눈을 부라린 적이 없었다. 이 느낌은 실로 새로웠다. 방 도통은 신기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이 녀석 보게. 잠수사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와도 내 수하에서 관직 생활을 해야 한다는 거 알지?"


   해평이 말했다. "그건 또 모를 일이죠. 만약 제가 살만 십여 근 찌우고 빈손으로 돌아오면 아마 어림군 소속 도련님 부대나 기웃거려야 할 텐데요."


   "……"
   그는 좀처럼 당황하는 법이 없건만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그리고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 이 꼬맹이가 안락향에서 보여준 무뢰한 행각이 떠올랐다. 확실히 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수 같은 놈이었다.


   방전은 소매에서 자그마한 금박 조각 하나를 꺼내 해평에게 던져주었다. "내가 실언했다. 사과의 뜻으로 작은 물건 하나 주마."
   "감사합니다, 존장." 해평은 선물을 받을 때 언제나 시원시원했다. 상대가 주면 서슴없이 받았지, 쓸데없이 사양하는 법이 없었다. "이게 뭡니까?"


   "순룡쇄驯龙锁다. 피를 떨어뜨리면 주인을 알아보아 짐승을 길들이는 데 쓰이지." 방전이 턱짓으로 옆에 있는 반우를 가리켰다. "저 꼬마는 영석을 삼키고 금을 배설하는 것도 아니니 보통 사람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기왕 네가 돈이 많다 하니 저놈은 네가 거두어라."


   "예?" 해평은 어안이 벙벙해 있다가 이내 목소리를 빽 높였다. "아니, 저건 사수가 부리던 물건 아니에요? 사람도 무는데! 저런 걸 어디다 쓰죠? 이걸로 원수에게 저주라도 걸어서 죽이라고요?"
   어린 반우 역시 경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반우 몸에 악주를 걸어둘 수 있었다면 천기각에서 진작에 불태워 없앴지, 네 차례까지 오지도 않았다. 순룡쇄를 채워두면 더 이상 널 물지 못하고 네가 명령하는 대로만 복종해야 해." 방전이 몸을 뒤로 기대자 그의 몸이 마차 벽면으로 '스르륵' 녹아들며 오관만 남겨 놓은 채 말했다. "그게 싫으면, 잠수사에서는 도련님 수발들어줄 하인이 없으니 직접 이부자리를 펴고 개어야 할 텐데."


   해평은 단칼에 거절하려 입을 열었지만, 뒤이어 들려온 말에 그만 머뭇거리고 말았다.


   "그래, 정 싫으면." 방전의 오관 밑으로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다시 돌려주거라."


   해평은 재빨리 그 '금박'을 손안에 꽉 움켜쥐고는 석 자 두께의 낯짝으로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읍했다. "존장께서 내리시는 선물을 어찌 감히 마다하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참된 불경이지요. 존장, 그럼 사양 않고 잘 쓰겠습니다."


   이 발칙한 녀석.
   방전은 허공에서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두어 번 툭툭 치는 시늉을 하더니 벽을 뚫고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어린 반우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지며 해평에게 달려들어 순룡쇄를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방 도통의 말마따나 반우는 생김새만 기이할 뿐 평범한 아이보다 나을 게 없는 완력의 소유자였고, 해평은 한 손으로 가볍게 녀석을 제압했다.
   궁지에 몰린 반우는 입을 크게 벌려 해평의 손을 물어버렸다.
   그 쇠못 같은 이빨은 실로 날카로워 해평의 손에서 금세 피가 배어 나왔고, 핏방울이 금박 조각 위로 스며들었다. 순룡쇄가 순식간에 길어지더니 허공에서 '착' 하고 매서운 소리를 내며 녀석과 해평을 갈라놓았고, 이내 반우의 목에 휘감겨 목걸이 형태를 이루었다.


   작은 괴물은 단숨에 제압당하여 꼭두각시 인형처럼 뒷걸음질을 쳤다.
   해평은 몹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저 목걸이…… 아니, 목걸이에 묶인 작은 괴물이 마치 자신의 신체 일부가 된 것 같았다. 비유하자면 고양이의 꼬리 같다고나 할까. 신경 쓰지 않을 땐 제멋대로 움직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제 뜻대로 통제할 수 있었다.


   해평이 시험 삼아 명령을 내렸다. "왼쪽으로 두 걸음 가봐."
   작은 괴물의 얼굴에 격렬한 반항과 분노가 스쳤지만, 두 다리는 얌전히 왼쪽으로 두 걸음을 옮겼다.


   "오른쪽으로."
   작은 괴물은 마치 해평 자신의 다리인 양 고분고분하게 움직였다.


   "헤." 해평은 신이 났다. 방 도통이 제법 쓸만한 물건을 던져준 모양이었다. "이제야 얌전해졌지? 이 어르신께 큰절을 올려라."
   "물구나무서기."
   "춤도 춰 봐."


   해평의 끝없는 장난질에 농락당한 작은 괴물은 까만 콩 같은 두 눈에 증오의 불길을 뿜어내며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남이 노려보는 것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상대가 화를 낼수록 오히려 더욱 흥이 나는 성미였다. 그는 얄밉게 송곳니를 핥으며 더욱 악질적인 장난을 쳤다. "그만, 엉덩이 그만 흔들고…… 자, 아빠라고 불러봐."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작은 괴물은 입을 달싹거렸으나,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곤 바람 새는 부싯갑처럼 짧은 숨소리뿐이었다."


   해평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꼬마의 혀는 아주 짧게 잘린 채 이빨 뒤에 웅크리고 있었다. 목구멍과 연구개의 형태도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마치…… 아예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 같았다.


   순룡쇄에 묶인 작은 괴물은 주인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하고 그저 '색색'거리는 바람 소리만 낼 뿐이었다. 괴이하면서도 측은했다. 


   해평은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 반 토막 난 혀를 보니 문득 황궁의 개들이 떠올랐다. 황성 안에서는 항상 정숙을 유지해야 하므로 개가 짖지 못하게 하려고 궁 안의 개들은 모두 성대를 잘라야만 했다. 예전에 해 귀비가 개를 한 마리 키웠는데, 어릴 적부터 장왕을 유독 잘 따르던 녀석이라 나중에 장왕이 독립할 때 광운궁에서 데리고 나왔다.
   그 늙은 개는 다른 개들과 어울려 놀려 할 때마다 이런 '색색'거리는 바람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점차 녀석은 꼬리를 흔들며 뛰노는 일도 줄어들었고 몇 달 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 일로 장왕은 큰 병을 앓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됐어, 그만 불러." 해평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몰아치는 바람에 눈을 뜰 수 없었고 방전이 어디쯤 날아가고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기에, 바람을 맞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존장! 그 사수 놈은 대체 무슨 심보죠? 아예 입을 만들어주지 말든가, 아니면 온전한 혀를 붙여줄 것이지 반쪽짜리 혀가 뭡니까? 이거 고칠 수 있는 거예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앞으로 무언가가 날아와 그의 뺨을 후려칠 뻔했다.
   해평이 두 손으로 받아 들고 보니 실로 꿰맨 책 반 권이었는데, 거의 너덜너덜하게 풀어질 지경이었고 쉰내까지 났다.
 

   그는 '우욱' 하며 창문을 닫고는 불결한 것을 만지듯 두 손가락 끝으로 누렇게 바랜 종이를 넘겼다.
   잔권의 첫 장에는 기형아 그림 몇 장과 함께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반우를 수련하는 열 가지 비법.'


   "이건 뭔 물건이야……"
   해평은 대충 훑어 넘기려 했으나, 읽어 내려가는 동안 찌푸리고 있던 눈매가 차츰 가라앉더니 이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다시 십여 쪽을 넘기고 나서 그는 한마디 없이 그 잔권을 덮었다. 시선이 꼬마 반우에게로 향했다.


   무슨 연유인지, 방금 전까지 분노로 일그러져 있던 반우는 그의 시선과 마주치자 흠칫 놀라더니 점차 얌전해졌다.
   어쩌면…… 해평의 눈빛이 '사람'을 바라보는 온기를 띠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해평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넌 사람 가죽을 뒤집어쓴 나무인형이 아니라, 원래 사람이었어?"


   반우는 그 물음에 약간 어리둥절해져서 해평과 한참을 눈싸움하듯 마주 보았으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며 다시 그 흉측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해평은 잠시 생각하더니 허리를 숙여 영석이 담긴 나무 상자를 열고 구슬 하나를 꺼내 건넸다. "자, 이거 먹을래?"
   꼬마 반우는 영석을 보자 모든 것을 잊고 달려들어 해평의 손에서 영석을 낚아채 단숨에 삼켜버렸다.


   해평이 막 무슨 말을 더 하려는 찰나, 아득한 구름 위에서 학의 길고 우아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차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는 순간 자신의 무게가 백 근 넘게 가벼워진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가 전율했다. 잠수사에 도착했다!


   해평은 다른 건 안중에도 없이, 영석이 든 상자를 짐 속에 쑤셔 넣고 다급하게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선산의 위용을 올려다보았다……그 사이 꼬마 반우가 그의 영석 상자를 뚫어질 듯 응시하며, 그 까만 눈동자에 탐욕스러운 시선을 번뜩이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작가의 말

이 1년짜리 프로젝트는 수료 기준을 충족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력 증명서도 안 떼어주고 취업 추천서도 안 써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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