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 좋은 상균이 요계를 부축해 구자원에 돌아오자마자 맨 북쪽 해평의 방문에서 '쾅' 하는 거친 소리가 났다.
해평은 겨드랑이에 요이불을 만 두루마리를 낀 채 인사 한마디 없이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상균이 그를 불러 세웠다. "사용! 어디 가? 날이 금방 저물 텐데. 술시면 원의 문이 잠긴다고……"
바람을 타고 해평의 성난 목소리가 매섭게 날아왔다. "그——럼——밖——에——서——죽——지——뭐!"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해평은 마음 같아선 커다란 돌덩이라도 찾아 저 반우를 박살 내버리고 싶었다. 만약 반우가 본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진작에 그리했을 터였다.
사실 진짜 독하게 마음먹고 사람을 죽이라 해도 못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저 반우는 사람인 듯 사람이 아닐뿐더러 손톱만 한 꼬마였다. 힘 한 번 주면 으스러질 듯한 조그만 것에게 차마 배알 꼴린 독기를 다 쏟아낼 수가 없었다.
이 몹쓸 고물단지는 이불을 개거나 잠자리를 봐주지도, 옷을 입히거나 머리를 빗겨주지도 못할뿐더러 사람을 물거나 흰자위를 까뒤집는 것 외엔 한 입에 남옥 한 상자를 통째로 삼켜버리는 식충이가 아닌가!
이건 금을 삼키는 수준이 아니라 한 입에 대저택 몇 채를 꿀꺽한 셈이었다!
방전의 악랄함은 필시 조상 묫자리부터 썩어 문드러진 게 틀림없었다!
해평은 산길을 따라 위로 내달리다 산을 순찰하던 도동과 부딪혀 팽이로 만들어 버리고는 곧장 산 중턱의 '징정당澄淨堂'을 향해 돌진했다.
징정당은 잠수사 관사*가 당직을 서는 곳으로,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곳에서 개규기 사형이나 사저들을 찾을 수 있었다. 대략적인 위치는 찾기 어렵지 않았으나 작은 뜰이 대나무 숲 사이에 숨겨져 있었다. 길눈이 어두운 해평은 멀리서 징정당의 지붕을 보고도 주변을 몇 바퀴나 맴돌며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管事 관리직
씩씩거리며 흙구덩이에서 도동 하나를 파낸 해평이 온몸을 뒤져 구깃구깃한 문로부 한 장을 찾아내어 막 길을 '물으려던' 참이었는데,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이 다 저물었는데…… 어, 어째서 또 너냐?"
해평이 고개를 돌리자 맑은 바람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청삼을 입은 살아있는 전설이 발밑의 검영을 수많은 빛무리로 흩트리며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고 사뿐히 내려앉았다.
"넌 밤고양이가 환생한 것이냐? 밤만 되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지수가 어깨에 떨어진 대나무 잎 한 장을 떼어내며 해평의 손에 들린 요이불 두루마리로 시선을 옮겼다. "아주 짙은 영기구나. 무슨 좋은 물건이라도 되느냐?"
일 각 후, 징정당의 작은 탁자 위.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반우를 바라보며 지 장군 역시 침묵에 잠겼다.
그날 밤 징정당의 당직은 수염과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 반선으로 이름은 소준蘇準이라 했다. 잠수사에서 형당을 주관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형벌을 맡고 있음에도 소 장로의 관상은 조금도 흉악하지 않았고, 늘 웃음을 머금고 있어 오히려 인자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았다.
소준이 반우를 이리저리 살핀 후 고개를 들어 물었다. "방금 이 반우가 영석을 얼마나 먹었다고 했지?"
해평이 대답했다. "거의 열 근은 될 겁니다."
소 장로는 영석을 '근' 단위로 말하는 사람을 처음본 터라 한순간 도무지 계산이 서질 않았다.
지 장군이 진심을 담아 물었다. "지난번 금평 교외에서부터 묻고 싶었는데 꼬마야, 귀댁에 영석 사설 광산이라도 있느냐?"
"그건 아니에요." 해평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옥석 광산과 마노 광산이 몇 개 있긴 해요."
"……"
"……"
세상 물정 모르는 이 풋내기 도련님은 대체 어디서 굴러온 건가!
"그건 중요하지 않고요."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은 듣는 이의 복장을 터지게 할 만한 발언을 이어갔다. "저 녀석이 제 영석을 다 먹어 치웠는데 전 어떡합니까? 어떻게 편지를……"
해평은 하마터면 '어떻게 집안에 편지를 씁니까'라는 속내를 내뱉을 뻔했으나, 때마침 잠수사에서는 명목상 제자가 가족과 연락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사실이 떠올라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존장, 저 녀석이 토해내게 할 수 있나요?"
"이미 입문했으니 사형이라 불러야지." 소 장로가 해평의 거리감 있는 호칭을 부드럽게 고쳐 주었다. "반우에겐 위장이 없다. '영석을 먹는다'고는 하나, 벽곡을 하지 않은 우리가 음식을 소화하는 것과는 달라 토해내게 하긴 어려울 게다. 다만 이리 많은 영석을 단번에 소화하지는 못했을 테니, 지금 당장 온몸의 법진을 깨부수고 영맥을 끊어낸 뒤 배를 가르면 일부는 되찾을 수 있을 게야."
"……"
어린 반우가 입고 있던 눈 시린 도화색 저고리는 이미 영석 때문에 팽팽하게 터져나가 있었다. 소 장로가 그 찢어진 저고리를 위로 걷어 올려 배를 드러냈다. 반우의 양옆 허리와 척추뼈는 특수한 목재와 도월금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위로 겹겹이 새겨진 법진이 영석에 의해 활성화되어 희미하게 빛났다. 반면 배의 가죽은 사람의 살갗이라 터질 듯 기형적으로 늘어나 있었다. 배꼽 한가운데 세로로 길게 난 흉터는 여전히 숨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반우의 일그러지고 부서진 생명력을 내비치고 있었다.
소 장로는 두 손을 소매에 속에 넣고 아이를 달래듯 해평에게 웃으며 말했다. "가서 저 벽에 걸린 '영벽' 단도를 좀 가져다주련. 지금 바로 갈라줄 터이니 조급해 말아라. 얼마간은 건질 수 있을 테니."
해평은 반우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소준을 바라보았다. "존…… 사형, 책에 이르길 이 아이 몸에 있는 목재며 도월금 같은 것들은 사람의 골육에 해당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뼈를 부수고 경맥을 끊은 다음 배를 갈라버리겠다는 뜻 아닌가?
소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눈가의 주름이 한층 깊어졌다. "틀린 말은 아니지."
"그게 아니라……" 해평의 표정이 수차례 일그러지더니 반우를 가리키며 절규했다. "이 녀석은 원래 이렇게 많이 먹는 건가요? 땅에 심어두면 몇 년 뒤엔 현은산을 통째로 갉아먹어 민둥산이 되는 거 아닙니까?"
소준은 그저 장난칠 요량이었으나 이 녀석이 갈수록 입이 거칠어져 선산마저 들먹이자 황급히 제지했다. "어허, 함부로 말하면 안 돼!"
지 장군이 아직 자리에 계시지 않은가!
지수가 실소를 터뜨렸다. "다 자란 반우가 쓰는 영석은 수행하는 자와 비슷하니 네가 거덜 날 일은 없을 거다…… 네 집안의 보석 광산 말이다. 다만 이 반우는 운이 사나워 전 주인이 제대로 먹이지 않고 오랫동안 한 가닥 영기만으로 목숨만 연명하게 한 모양이구나. 아마 오랜 세월 지독하게 굶주린 탓에 네 영석 한 상자를 참지 못하고 집어삼킨 것이겠지. 앞으로 굶기지만 않는다면 이리 먹지는 않을 거다. 제자의 월례가 남옥이 세 개이니 네가 영규를 트기 전까진 다 쓰지도 못할 테고 매달 한 개씩만 나누어주면 될 일이다."
해평이 기함했다. "한 달에 고작 세 개인데 그중 하나를 저 녀석에게 떼어주라고요?"
어째서 다 못 쓴다는 거지! 지척에다 한 달에 최소 네 개는 태워야 하는데!
"그건 그렇지." 소 장로가 맞장구를 쳤다. "내가 보기에도 그 사수의 솜씨가 형편없어 이 반우의 품상이 그저 그렇구나. 녀석이 삼킨 영석 한 상자면 진짜 괴뢰 한 부대를 사고도 남을 텐데 뭣 하러 이런 걸 데리고 있느냐? 번거롭게 굴 것 없이 당장 배를 갈라 영석을 되찾고 나중에 새것을 사거라."
그러면서 손을 뻗자 벽에 걸려 있던 벽사도 영벽이 순순히 그의 손에 떨어졌다.
소준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칼날을 밀며 말했다. "사형이 늙어서 눈이 침침하구나. 어디, 어디부터 칼을 대야 할지 좀 볼까……"
"잠깐잠깐잠깐……" 영벽의 서늘한 칼빛이 반우의 배에 닿으려 하자 해평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막아섰다. "사형,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소 장로가 채근했다. "더 기다리다간 영석이 다 녹아버릴 텐데."
그 말에 해평은 반우를 노려보았다. 보면 볼수록 밉상이었다.
하지만 미운 건 미운 거고 고작 물건 몇 개 때문에 어린아이를 새끼 돼지마냥 배를 가르는 짓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숨이 목구멍에 걸린 채 내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던 그는 한참을 서 있다가 원통하게 소맷자락을 뿌리치며 내뱉었다. "됐어요!"
"아이고, 됐다고?" 소 장로가 짐짓 놀란 체했다. "백 냥어치 남옥이면 황금 사오천 냥은 족히 될 텐데 그걸 포기하겠다고?"
온종일 저잣거리를 어슬렁거리며 해평은 엽전 한 닢이면 금평 남교에서 손바닥만 한 초염* 잡곡전병 두 장을 살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한 꾸러미면 평범한 민가에서 한 달을 버틸 수 있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왜 고깃죽을 먹지 않느냐**' 따위의 얼빠진 소리를 할 위인은 아닐지언정, 평생토록 부족함이나 궁핍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남옥 백 냥'이든 '황금 천 냥'이든 간에 솔직히 그의 마음속에선 '며칠 뒤면 할머니께 편지를 쓸 영석이 떨어진다'라는 사실만큼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속은 쓰렸으나 뼈에 사무치는 고통은 아니었고 그저 울화가 치밀 따름이었다.
*초염(椒盐): 화초(화자오, 산초)와 소금을 섞은 양념.
**하불식육미(何不食肉糜): 서진(西晉)의 혜제(惠帝)가 백성들이 쌀이 없어 굶어 죽는다는 말을 듣고 "왜 고깃죽을 먹지 않느냐"라고 한 고사.
"그날 제가 방 도통한테 몇 마디 대들었다고…… 애초에 시비는 그분이 먼저 걸었다고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기를 쓰고 절 골탕 먹이려 듭니까! 나이가 백 살은 다 된 노인이 저 같은 애송이랑 같은 수준으로 따지다니, 속이 어찌나 태평양같이 넓으신지 삼전삼출*을 해도 되겠어요!" 해평이 홧김에 반우를 소 장로 앞으로 밀어붙였다. "기부하겠습니다. 사형께서 이 녀석을 도동으로 부리든 장식으로 세워두든 알아서 하십시오. 어쨌든 전 안 가질 랍니다."
"그거 참 고마운 일이구나." 소 장로가 싱글벙글 웃었다. "이 반우가 단숨에 그 많은 남옥을 먹어 치웠으니 뱃속의 것을 다 소화하고 나면 지능도 체격도 훌쩍 자랄 게다. 그때쯤이면 폐물 반우가 아니게 될지도 몰라. 사제가 반우를 기부한 게 아니라 금산을 기부한 셈이로구나!"
*삼전삼출(三進三出): 대문에서 안채까지 안뜰을 세 번 거쳐야 들어가는 대규모 전통 저택의 구조. 해평은 방전의 쪼잔한 속을 반어적으로 비꼰 것.
"……"
안 돼, 너무 손해다!
그는 일순간 진퇴양난에 빠졌다. 계속 데리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지고 잠수사에 기부하자니 호구가 된 기분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개 같은 경우란 말인가.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잠시 후, 해평은 반우를 다시 끼고 온 길 그대로 돌아갔다.
벽에 바를 수도 없는 진흙 같던 세자 나리는 분노에 불타올라 각성하고 말았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힘을 길러 훗날 훌륭한 인재가 되면 방씨를 마대자루에 씌워 돼지 대가리가 되도록 두들겨 패줄 것이다!
이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내 성을 갈겠다.
마침 당직이 아니었던 방 도통은 모처럼 한가했다. 그가 얼굴을 쓱 한 번 훑자 각이 뚜렷했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상으로 변했다. 그는 보석빛 남색 장포를 벗고 평상복 차림으로 갈아입은 뒤 밤참을 먹으러 서봉각棲鳳閣으로 향했다.
능양하에 바람이 불어 짙게 깔렸던 안개가 제법 걷혀 있었다. 방전은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연달아 두 번 재채기를 했고 코를 문지르며 고개를 들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최기를 발견했다.
최기는 화방 나루터에서 이백 보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뜰 안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했다. 입구에는 유리 기와도, 커다란 현판도 없이 그저 짙은 회색 돌담만이 둘러져 있었고, 새하얀 증기등이 담 모서리의 '최기'라는 두 글자를 비추고 있었다. 그 밑에는 부귀가 넘쳐 흐르는 비단잉어 문양이 작게 찍혀 있었다.
어지간한 재력이 없는 자들은 뜰 안을 기웃거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방전은 문득 무언가를 느끼고 영감을 극한까지 확장했다. 서쪽 현은산 방향에서 자신을 콕 집어 원망하는 한 가닥 원한의 기운이 날아오는 것을 감지했다.
"뒤에서 내 욕을 하고 있군." 방 도통은 단박에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고는 개의치 않다는 듯 웃어넘겼다. "요놈아, 나중에 이 방 할아버지에게 고마워할 때가 올 게다."
그는 일부러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 반우를 해평에게 떠안겼고, 또한 고의로 영석을 잘 간수하라는 주의를 주지 않은 것이었다.
옥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잠수사에 가면서 다과를 챙겨가며 봄소풍 가듯 하는 꼴을 보니, 녀석은 필시 그저 시간이나 때우다 올 심산임이 빤히 보였다. 거기서 골치 아픈 일거리라도 얹어주지 않으면 일 년 뒤엔 정말 영규조차 트지 못할 게 분명했다.
계화 오리가 식탁에 오르고 방전이 막 젓가락을 들려던 참에 돌연 아래층에서 언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소이가 한 소년을 쫓아내고 있었다. "손님, 오리 한 마리는 안 사시더라도 반 마리라도 사셔야죠. 새끼 오리 반 마리라도 괜찮습니다요. 새끼 오리 반 마리 해봐야 고작 이백 전이니, 제가 주인장께 말씀드려 오리 머리는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오리 머리를 빼달라는 손님은 봤어도 머리만 쏙 빼서 사겠다는 손님은 금시초문입니다. 차라리 딴 데 가서 알아보시지요?"
소년의 행색은 그럭저럭 깔끔해 보였으나, 바짓가랑이가 발목까지 올라갈 만큼 짧아 서봉각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궁상맞았다. 주변 사람들은 누군가 오리 머리만 사러 왔다는 소리에 피식피식 웃었고, 누군가는 짓궂게 놀려댔다. "작은 형님, 수염도 안 난 주제에 벌써부터 '계집애'*를 돈 주고 살 궁리를 하다니 너무 이른 거 아니냐?"
* 鸭头(yā tóu, 오리 머리)와 丫头(yā tou, 처녀)의 발음이 같다.
방전은 흘끗 곁눈질해 보고 그 '작은 형님'은 사실 앳된 태가 가시지 않은 소녀라는 것을 알아챘다.
소녀는 자신이 주눅 들었다는 걸 들키자 순식간에 목덜미까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억지로 뻣뻣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우겨댔다. "우리 식구들은 원래 오리 머리만 먹어요. 식구 수가 적어 반 마리씩이나 사봤자 다 먹지도 못하는데, 그게 안 된단 말입니까?"
점소이가 올라온 바짓단과 해진 소맷자락을 훑어보며 비꼬았다. "새끼 오리 반 마리면 우리 주인장네 큰 얼룩고양이 코에 붙일 데도 없는데 댁이 대체 어느 집 금지옥엽이시기에 그리 입맛이 고상하신지요."
소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등 뒤로 감췄다.
점소이가 말을 이었다. "차림표에도 없는 걸 팔 순 없으니 정 드시고 싶거든 오리를 시켜놓고 머리만 안 드시는 손님을 찾아 '나눠서' 사보시든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사꾼 하나가 난장판이 된 제 상을 두드리며 거들었다. "여기 오리 머리 남았는데 누가 가져갈 텐가? 가져가라."
수치심이 극에 달한 소녀는 발을 구르며 목청껏 소리쳤다. "서봉각은 양을 속인다!"
"아니,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서봉각은 큰 가게라고 손님을 얕본다! 양을 속여 판다고!" 가게의 호위 무사들이 다가오는 것을 본 소녀는 몸을 돌려 도망치다 마주 오던 손님 한 명과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나 이 교양 없고 가난한 꼬맹이는 사과 한마디 없이 달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방금 저 사람들이 제 입으로 불었잖아요! 오리 반 마리로는 고양이 밥상에도 못 미친다고!"
"아이고, 손님, 죄송합니다." 점소이가 소녀에게 부딪혀 비틀거리는 손님을 황급히 부축했다. "한밤중에 웬 미친놈이 굴러들어와서 이 난리를."
손님은 혐오스럽다는 듯 앞섶을 털어내며 혀를 찼다. "내 생각엔 옛 제도를 부활시켜서 날이 저물면 성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해! 멀쩡한 금평 성을 저 남교 촌놈들이 다 망쳐놓고 있지 않은가!"
그 말이 나오자 서봉각 안에서는 즉시 동조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옳은 말씀이오! 요 며칠 유민들이 상소까지 하겠다고 남성문 밖에 떼거지로 몰려들었다지 않소!"
"무슨 일로?"
"예전에 등운교 철로를 놓을 때 땅을 징발했던 일 때문이지." 자리에 앉아있던 소식통이 입을 열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어째서 다시 들고일어났는지…… 에휴, 말하자면 안됐지. 그날 성 밖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운하 변에 노숙하는 유민들을 봤는데 모기랑 똥파리 떼가 윙윙 꼬이는 게, 맙소사, 멀리서 보면 웬 공동묘지인 줄 알겠더이다."
"이번엔 사달이 단단히 날 모양이오. 궁 안에서 태자까지 백성들을 위해 상소를 올리셨다던데 성인께서 단단히 진노하셨다더군."
"성인께서 무엇 때문에 진노하신 거요?"
"성인께서는 온 땅에 등운교가 굴러다니기를 바라시니까. 요전 날 서쪽 초나라에서도 사신이 오지 않았소……"
서봉각은 뼈대 있는 노포라 가격이 제법 나가는 편이었고 손님들도 제법 돈이 좀 있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권력자들은 아니었다. 진짜 거물들의 집사는 밖에 나와서 이리 입방아를 찧지 않는 법이니까. 소상인의 지배인이나 마차 대여소의 관리인...... 이런 부류가 모여 앉아 허무맹랑한 국가 대사를 들먹이며 자신의 폭넓은 인맥과 빠른 정보통을 과시하는 것을 가장 즐겼다.
방전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가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느릿느릿 제 잔에 술을 채우며 넋을 잃고 있었다.
그때 거리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더니 누군가 소리쳤다. "빨리 저기 봐! 별이 떨어진다!"
방전이 소리 나는 곳을 돌아보자 몇 줄기 유성이 밤하늘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지평선 너머로 떨어져 갔다.
잠수사 징정당 안, 지 장군은 증기 기관차처럼 씩씩거리며 멀어지는 해평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소 장로가 건넨 찻잔을 받아 들며 말했다. "방문창은 참 묘한 사람이란 말이지."
소 장로가 대답했다. "문창은 내 손으로 거둔 녀석이라 내 잘 알지. 길들여지지 않는 성격일세. 안중에 없는 사람은 그저 눈앞에서 대충 비위나 맞춰주다 고개만 돌려도 얼굴조차 잊어버리지. 눈여겨본 자가 아니라면 굳이 이런 좀스러운 장난질을 칠 위인이 아니야. 저 꼬마 도련님은 어느 집 자제인가?"
두 사람의 행색만 보면 마치 할아버지와 손자 같았으나, 항렬로 따지자면 소준은 외문의 개규 수사에 불과해 지수에게 깍듯이 사숙이라 불러야 마땅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격식 없이 편안해 보여 도리어 오랜 세월을 함께한 벗처럼 보였다.
"별달리 뿌리 깊은 가문은 아닌 신흥 귀족이고 배경은 단순해. 예전에 어떤 사건에 휘말렸는데 보아하니 소방이랑 성미가 아주 잘 맞는 모양이더군. 그 아이를 선발 명단에 올린 것도 소방이 제안한 거고. 아마 천기각에서 미리 사람을 점찍어두려 한 거겠지…… 정말 그 녀석답네. 내문에서 뽑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골랐으니." 지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 소방을 거둔 게 자네였군. 어쩐지 내가 그에게 접인령이 필요하냐 물었을 때, 그 억양이 젊은 시절 자네와 똑 닮았더라니."
소준의 표정이 한순간 묘하게 일그러졌다. "자네가 그 아이에게 접인령이 필요하냐고 물었다고…… 이런, 소小사숙. 자넨 가끔 정도가 지나쳐."
지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응?"
"문창은 본디 잠수사 출신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로 영규가 열린 아이지. 내가 그 아이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자네에게 내문 보증을 서달라 부탁했고, 그 덕에 기명제자 신분으로 천기각에 들어갈 수 있었네." 소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자넨 그저 편지 한 통 툭 던져주고 까맣게 잊었겠지만, 그 아이는 자네의 보증서를 고이 간직하고 다니며 평생을 바쳐 천기각에 충성했다네. 몇 번이나 사경을 헤매다 동료들에게 업혀 돌아왔을 때도, 열에 들떠 헛소리를 지껄이면서까지 자네 보증서를 꽉 움켜쥐고는 '지 장군님을 볼 낯이 섰다'고 중얼거렸을 정도야. 한데 자네는…… 어찌 이리 사람 마음을 시험하시나?"
지수는 조금 머쓱해졌다. "내가 이런 인연이 있는 줄 어떻게 알아…… 그 녀석도 내게 말한 적 없고, 나도 굳이 남의 내력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아닌데."
"어째." 소준이 그를 흘끗 보았다. "항간의 소문이 사실인가 보지? 현은산 사대한사* 중 하나가 드디어 줄어든다는 소문 말일세."
지수가 되물었다. "무슨 소문? '사대한사'라니?"
*사대한사(四大憾事): 네 가지 큰 유감스러운 일
"소사숙 자네가 드디어 제자를 거둔다는 소문이지. 사명 대장로의 관문제자이자 비경봉의 봉주이신 자네의 첫 제자가 되기 위해 온 문파의 검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건만. 정작 자넨 비경봉을 물려받고도 삼십 년 동안 산인山印 한 번 열지 않고 산기슭에 초가집이나 지어놓고 살며 제자를 거두겠다는 말은 입 뻥긋조차 않지 않았나. '소사숙은 제자를 거두지 않는다', 이것이 '임 대사가 기물을 정제하지 않는 것, 문 봉주가 입을 열지 않는 것, 단예 대장공주가 화려한 옷을 입지 않는 것'과 더불어 현은산 사대한사로 불린다는 걸 정녕 몰랐단 말인가?"
"대체 무슨 해괴한 소리를." 지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당부하는데, 그런 소문이 더는 퍼지지 않도록 하게. 나야 보잘것없는 몸이니 아무렇게 떠들어도 상관없지만 단예 사저를 함부로 입에 올리며 불경을 저질러선 안 돼."
소준이 물었다. "왜, 진짜로 제자를 거둘 심산인가? 온 산을 가득 채운 천재 검수들을 다 마다하고 백지장 같은 아이를 데려다 기초부터 가르치고 싶었던 건가?"
"나조차도 아직 천지의 이치를 명확히 깨치지 못했는데, 어찌 남에게 도를 전하고 의혹을 풀어줄 자격이 있겠어?" 지수는 맑은 차를 한 모금 머금고는 손을 내저었다. "며칠 뒤 단예 사저가 오시면 제자들에게 《유현경幽玄經》을 강론하실 거야."
"뭐라고? 단예 대장공주께서 오신다고!" 깜짝 놀란 소준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잠수사에는 상주하는 축기 사형을 제외하면 우리 같은 잡역 반선들뿐인데 그 노조종을 모시기엔 격이 턱없이 부족하네."
"알아. 그래서 내가 미리 영접하러 와 있잖아." 지수가 말했다. "이번 기수 제자들은 내가 주관하여 뽑았으니 내가 직접 자리를 지키지 않는 건 결례겠지."
"대장공주의 벽담봉이 이번 신입 제자들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건가?" 소준이 물었다. "하지만 그 노조종께서는 승령 원만 경지를 이루시려고 폐관에 드셨다고 들었는데?"
지수는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응, 나오셨어."
"이런…… 폐관에 드신 지 고작 백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너무 서두르신 거 아닌가?"
"형세가 급박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등 뒤에서 남을 논하는 것을 꺼렸기에 더는 말을 보태지 않고 그저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뗐다. "명의明儀, 지금 돌이켜보면 자네가 당년에 고집스럽게 내문에 들어가지 않은 것도 좋았던 것 같아. 속세에 남아 마를 퇴치하고 도를 지키며 이백 년을 호쾌하게 살다가 한적한 곳에서 노후를 보내니……"
소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헛소리를. 내가 내문을 마다한 게 아니라 내문이 날 받아주지 않은 거지. 내문에서 눈길 한 번만 줬어도 난 진작 이부자리를 싸 들고 굴러갔을걸…… 아, 그나저나 제자를 거둘 생각도 없으면서 대선은 뭣 하러 주재한 건가? 승령봉주가 직접 하산한 게 대체 몇 년 만의 일인데. 자네가 주재한 대선이라 나 사형이 이번 제자들의 성적이 부진해 자네 체면을 구길까 두려워 이 녀석들을 아주 쥐어짜서 어떻게든 모조리 영규를 열게 만들 작정이라는 걸 자넨 꿈에도 모를 테지."
"에휴……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난 그저 사문의 명을 받들어 사수 하나를 처리하러 나갔다가 겸사겸사 다른 이가 헛걸음하지 않도록 예비 제자들을 데려온 것뿐이야." 지수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안락향에 출몰했던 사수 '태세'에 얽힌 일련의 사건들을 대략 털어놓았다. "그 자가 돌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나 성신해星辰海를 뒤흔들었으니 반드시 화근을 뽑아야만 했지."
이야기를 다 들은 소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라고? 태세? 세상에 정말 태세가 존재한단 말이야? 심지어 자네가 직접 눈으로 봤다고!"
지수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아는 얘기야?"
"그 이름은 내 익히 들어 알고 있네만……" 소준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건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아니면 뭔데?"
"일종의…… 도등*, 허구로 빚어낸 사신이지." 소준이 단언했다. "민간 사수들은 늘 자원이 부족해 무리 짓기를 좋아한다는 건 자네도 알 테고."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템
"녀석들은 별의별 도를 다 수련하지만 무리를 지어 서로의 이익을 도모할 뿐 모든 이가 굽어 모실 만한 수령은 드물지. 그래서 종종 서왕모나 태세성군 같은 허구의 신을 지어내고는 모임 때마다 함께 제를 올린다네…… 일종의 의식이야. 제를 올림으로써 다 같은 한편임을 증명하는 거지. 내가 천기각에 몸담고 있을 적에 '태세'를 참배하는 사수 무리를 일망타진한 적이 있었지."
지수가 중얼거렸다. "큰 불이 걷히지 않으니, 매미 소리 끝이 없구나."
"맞아, 바로 그 구절이야!" 소준이 무릎을 쳤다. "'태세'란 건 본디 나무로 깎아 만든 감실*이었는데! 어찌...... 그들이 감실을 살려내기라도 한 건가?"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했다. 양쪽의 안색 모두 몹시 무거워졌다.
*감실(龕室): 신상(神像)이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만든 작은 집 모양의 구조물.
소준이 다시 물었다. "아까 그가 '성신해'를 놀라게 했다는 건 어찌 된 연유인가?"
'성신해'는 현은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심연의 절경으로 항간에는 그곳에서 사람의 운명을 엿볼 수 있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운명이란 얼마나 오묘한 것인가. 천기를 엿보려는 자는 자칫 심연에 집어삼켜져 뼈조차 추리지 못할 수 있기에 현은산에서는 제자들의 출입을 엄명으로 금하고 있었다. 사명 대장로 장각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승령봉주라 한들 부름 없이는 십 년에 단 한 번만 성신해에 내려갈 수 있었고 그조차 반 주향의 시간을 넘기거나 자신의 명운을 엿보는 짓은 절대 허락되지 않았다.
지수가 입을 열었다. "성신해에서 조정을 부르더니 용맥을 향해 희미한 방향을 일러주었어. 내가 조정을 품고 내려갔을 때 금평 인근에 탁기가 일렁이는 것을 보았는데…… 요사가 출몰했다는 뜻이었지. 동요가 그리 거세지 않아 처음엔 축기기 중후반부의 풋내기일 거라 짐작했지만 기어이 성신해까지 뒤흔들었으니 보통 내기가 아닐 테니 만약을 대비해 사존께서 내게 친히 다녀오라 명하신 것이야."
"성신해조차 그 사수의 수위를 꿰뚫어 보지 못했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나 혼자 가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 내 목 목숨 하나야 어찌 되든 상관없지만 금평의 수백만 백성의 목숨이 걸린 일이 장난도 아니고." 지수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반보선태란 수위는 허실이 너무 많았어. 예전에 단예 사저께서 친전 제자를 지도하실 때 당신의 수위를 개규 수준으로 눌러 낮추셨음에도 축기 제자들조차 감히 손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걸 내 두 눈으로 봤거든. 그런데 그 사수 놈은 소방 같은 인간행주 하나가 범인 꼬마 하나를 데리고 기습에 성공할 수 있었어. 그럼에도 그놈의 수위가 승령기 후반부인 것만은 틀림없었으니…… 내 느낌엔 단약으로 억지로 쌓아 올린 수위였네."
"단약은 모래알과도 같아 기껏해야 닭장이나 돼지우리나 짓는 게 고작이고 결코 누각을 세울 수는 없지." 소준이 말했다. "단약으로 승령까지 쌓아 올릴 수 있었다면 현은산에 봉주가 대체 몇 명이나 쏟아졌겠나?"
"그건 나도 알아……." 지수가 막 입을 떼려는 찰나, 고요하던 징정당 안으로 잘게 부서지는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은 뜰 안, 빈둥거리던 도동들이 일제히 부적의 지시도 없이 저절로 몸을 돌려 창가를 향하더니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소준이 손을 뻗어 징정당의 창문을 열어젖혔다.
유성이 화살처럼 쏟아져 고요한 밤하늘을 찢었다.
"어찌하여 멀쩡하던 남쪽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가?" 소준이 중얼거렸다. "불길한 징조로군."
작가의 말
간신히 쓰고 있습니다……
화폐 구매력과 환전 체계는 대략 이러합니다:
엽전 한 닢으로 전병 두 장(발효되지 않은 밀가루 반죽, 고기 없음)을 살 수 있고, 물을 조금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하며 다 팔지 못하면 저녁에 할인이 있습니다.
일관전(一貫錢, 한 꾸러미 )은 엽전 1,500닢 = 은 1냥.
은 12냥 = 금 1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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